어떤, 유희(遊戱)
-李時明.
문득,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 하나...
1970년 중반무렵, 무료한 여름날 어느 오후
화분 몇개로 작은 화단을 꾸며놓은 곳이었다
꽃잎에 날아와 앉은 꿀벌 한 마리를, 무심코
검정고무신 한짝을 거꾸로 벗어 쥐고서, 살금살금 다가 가
휙~덮어씌워 잡아 나꿔채고서, 쥐불놀이 하듯
어깨돌림으로 재빨리 윙윙~돌려서 기절시켜 생포했다
잠시후, 파리 한 마리도 또 그렇게 생포해서 잡았다
파리와 꿀벌은 느닷없이 순식간에 영문도 모르고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혼절하여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순간, 나는 이상한 호기심과 장난끼가 발동하여
수박을 반 짤라 놓은 것처럼, 둥그런 반원 플라스틱 바가지에다
물을 담아 떠다놓고선, 가까스로 혼미한 정신을 수습하고서
꼼지락 거리는 파리와 꿀벌을 바가지 물 속으로 툭~던져 빠트렸다
그리고, 담벼락 밑 땅위를 기어가던 개미 한 마리도 잡아서 같이 넣었다
꽃잎 위를 선회하던 꿀벌과 파리, 그리고 바지런히 땅을 기어가던 개미
이 세마리 곤충은 할일없이 무료한 장난끼의 소년에게 재수없게 걸려들어
갑자기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정없이 빙글빙글 내돌리며 정신을 잃었다가
간신히 깨어나자마자, 곧장 망망대해 바다 속에 내던져져 빠져있었던 것이다
세마리 곤충은 수십길 넘게 출렁거리는 거대한 파도에 휩싸인채, 공포에 떨며
목구멍과 코 속으로 사정없이 밀쳐드는 물을 삼키며 혼비백산하여
익사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헤엄쳐 나아가서
수면 끝자락 테두리 안쪽으로, 바가지의 주름 진 곳에 기어올라 헉헉거리며
가쁜 한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중지 손가락 끝으로 툭툭~떠밀고 몰아 대면서, 세 마리 곤충을
또 다시 망망대해 속, 바다 한 가운데로 그들을 밀쳐 넣었다
녀석들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하면서 바다에 빠져죽지 않으려고
한참동안 아둥바둥 발버둥 쳐대더니, 그 중 가장 몸집이 작은 개미가
물 속으로 제일 먼저, 기절한채 살짝 가라앉으며 익사하는 것 같기에
얼른 건져서 방바닥에 갖다놓고서, 물기 없는 쪽으로 툭~밀어내고선
혹시나 살아나려나! 하며, 더운 입김을 후욱~후욱~불어 넣어주었다.
잠시 후, 개미는 꼼지락거리면서 부시시~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그러는 와중에, 짬짬이 파리와 꿀벌을 툭툭 물 속으로 밀쳐넣으며,
빠트리기를 몇 번 더 반복 했더니,그 두마리도 곧바로 개미처럼 혼절해서는
미동도 않으며 수면위로 둥둥 떠다니기에, 또 건져내서 좀전에 개미에게
한 것과 똑같이 더운 입김으로 훅훅~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잠시후, 그 셋은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나는 또 다시 바다 속으로
그들을 던져 넣었다
처음과는 달리 녀석들은 기진맥진 해서인지, 얼마 못가서 금방 또 기절해버렸다
입김을 불어 되살려 놓고는, 다시 빠트리기를 여러번 하다가,
성냥개비 하나를 던져넣어 주었다.그러자 세마리 모두가 성냥개비 통나무
위쪽으로 필사적으로 헤엄쳐 기어오르며, 마치 섬에 기어오르듯이 올라 붙어
앉았다.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심코, 성냥개비를 툭~치며 물 속으로
빙그르르 돌려대었다. 세마리는 마치 물레방아에 매달려 붙은채로, 바다 속을
수차례 부침하다가 마침내, 역시나처럼 개미가 제일 먼저 기절해버렸다
문득, 몸집이 제일 작은 개미가 불쌍하고 측은해 보이기에,더운 입김으로
훈기를 불어 되살려 놓고 담벼락 밑,흙더미 구멍 앞으로 슬며시 갖다 놓아 주었다
정신이 좀 차려지자, 개미는 비틀걸음 걸으며 흙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녀석은, 그렇게 천만다행 구사일생으로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 살아간 것이다
남은 두 마리는 무심한 악동의 심심파적 놀이에 속절없이 명줄을 놀림 당하며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여러차례 몇 번 더 거듭하다가, 한 참 후에는 마침내
두 마리 모두 다 꼼짝하지를 않았다. 죽어버린 건가? 하고,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다시 더운 입김을 한참동안 훅훅~불어주었더니,참으로 모진게 생명력이었든지...
두 마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되살아 났다.나는 왠지 모르게 이상하고 묘한
마음에, 꿀벌은 그만 살려줘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화단의 꽃덤불 속,
잎사귀 섶위로 가만히 올려주었다. 녀석은 비로소 그렇게 살아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파리 한 마리는, 그 때 내생각에서는 더러운 똥간에서
생겨나와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내리며, 갖은 병균을 옮기는 흉물로 느껴져
여지없이 또 다시 물바가지 속으로 집어넣기를 수 차례나 더 반복했더니,결국은
익사를 했는지 툭툭 건드려도 전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죽어버렸나 보다!
하고서는, 쓰레기통 속으로 휙~던져버렸다. 한참 호기심 많았던 십대 사춘기
소년-악동이 우연히 저지른 장난-유희는 그렇게 끝이 났다.무심한 세월이
흘러흘러 수십년이 지난 지금, 문득 그 때의 일이 불현듯이 떠오르며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여 감기고, 만감이 교체하며 지나간다.
어느날, 평온한 일상에서 느닷없이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혼절했다가는 가까스로 겨우 깨어보니, 거대한 파도가 넘치는 망망대해
바다 속에 빠진 채,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기를 수차례 거듭하며 사투를 벌여야
한다면, 그야말로 천청벽력이 아니랴! 무던히 주어진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무참하게 명줄을 강탈 유린당하고,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생사여탈의 철망에 걸려들어 죽었다가 살아나는 걸, 반복하며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상처를 입고서는 나머지 생을 살다간, 꿀벌과 개미...그리고 끝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악~소리 한 번 못질러 보고 죽어간 가엾은 파리 한 마리
영문도 모른 채, 어느날 갑자기 거대한 회전 바퀴 속에서 사정없이 내몰리며
휘돌리다, 훌쩍 망망대해에 던져져서 생사의 문턱을 수차례 넘나들며, 혼절했다
깨어나기를 거듭하는 혹독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들은 도대체, 왜? 자신들이
그런지경에 처하고,또 그리 당해야 하는지 이유도 까닭도 도무지 모른채,
일방적으로 무자비하게 명줄을 유린 당하던 세 마리의 그 곤충들, 홀연히
그 때 유년의 기억이 선명하게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때, 내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조금의 피해도 일체 주지 않았던
세마리 곤충들... 나와는 전혀 무관하게 평온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던 그 작은
생명들에게, 나는 무심코 실로 엄청난 죄악을 서슴없이 태연하게 저질렀던 것이
아니던가! 소스라치는 심정으로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어쩌면 지금 내가 살아가
이 세상이라는 곳도, 나의 한계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존재에 의해 무심한 유희적 장난에 휘둘러지는 게 아닐까?
하고, 소름끼치는 무서운 생각을 해본다.사람이라 칭하는, 이 인간이라는 기이한
물형(物形)들의 삶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어쩌면 그와 하등 다를바가 없고
같은 것이 아닐런지...
2006.01.23.-[國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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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떠오르는 유년의 무심했던 장난의 기억이 되살아나, 생각들을 곰곰히
더듬으며, 나와 다를바 없이, 소중한 생명줄을 받아 한 세상 살려고 나왔던
작은 생명체-꿀벌,파리,개미... 그 세마리 곤충들에게 무심코 저질렀던, 지난날
나의 엄연한 죄악을, 비로소나마 일말의 속죄와 사과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크고 작은 여러 수천만종(種)의 생명현상에 대한, 새삼스런 경외감과 그에
일어나는 만상(萬想)들을 가만히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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