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시
2007.08.3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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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오연희 뒷마당 한 구석에 초라한 몰골의 밥솥 하나, 쪼그리고 앉아 있다 빙 둘러 붙어있던 걸치개는 부서져나가고 몸통만 덩그렇게 남은 저 알몸 속에서 부슬부슬 익어가던 구수한 살 내 벌떡벌떡 숨을 몰아 쉬던 입술 가슴을 열면 이팝꽃 눈부시던 풋풋한 한 시절 있었다 불더미에 얹혀서도 성급히 타오르지 않던 뭉근한 기력을 다한, 퍼주고 또 퍼주고 긁히고 긁혀 얇아진 바닥 탄탄하던 몸 봉긋 펼쳐져 날아갈 것만 같던 치마자락 그 윤기 흐르던 처음도 거친 마지막도 훌훌 털어버린, 허방 속에 햇빛과 바람 웬종일 소슬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