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2007.04.05 22:18

최석화 조회 수:472 추천:27

아버지의 땅


아버지는 말없이 산속에 누워 있었다
소주 여섯 잔에 오징어포  나무젓가락
소주 한 잔 올릴 때 마다  
아버지의 생애가 술잔에 맑게 비쳤다

푸른 철대문 앞
레이반선글라스를 쓰고 신시장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색안경에 굴절되어 건너오던
기억속의 고향이
공원묘지 한구석에
내 마음 보다 먼저 와 누워 있었다
술잔 가득 술을 부어 놓고
어설픈 몸짓으로 절을 하는
딸을 아버지는 보고 있는 걸까

무덤 주변엔 색 바랜 조화가
바람의 물결에 세월의 소리를 숨죽여 듣고
서로의 상처를 부비며
가라앉은 오후를 깨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검은색(오석)묘비가 보였지
차거운 묘비를 어루만지자
습기 찬 땅에 등기대어 누워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점점이 다가와
안쓰러운 눈빛으로
봉합 되지 않은 딸의 상처를
세상 밖에 걸어 두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

사남매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진 검은색 묘비 등 뒤
오빠와 언니와 남동생
모두는 짝수가 되어 흐린 세상을 건너가고
버려진 홀수 하나가
빗물에 눅눅해진 옷을 말리느라 분주해 하고 있다

홀로 와 홀로 잔을 올리고
산자의 허망한 꿈들을 가득 내려놓았다
無形의 세월을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며
내 긴 그림자 오후의 공원묘지에 묻어둔 채
아버지의 생을 가슴에 담아 내려오던 산길
뒷덜미에 마냥 아파하는
봄 햇살이 스스로 자멸하던 곳
꺾어진 구비마다 엇갈린 발자국들이
내 가슴에 길을 내며 가고 있었다

아버지 저 이제 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래요
이 생이 끝나는 날 영원한 종착점에서 만나요
미로처럼 얽힌 도회의 뒷골목
회색의 빌딩 사이로
눈부신 햇살을 볼 수는 없나요
등 떠밀려 떠나온
어제가 이제는 그만 쉬라고 말하네요
아버지가 즐겨 찾던
木月의 시비가 있는 보문호수에 아버지
아버지를 만나러 저 가고 있어요

젖은 분홍빛 꽃잎들은 아직도 분분히 날리고 있을까
백조호도 물살을 가르며 세월을 낚아채고 있을까
닿을 수 없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검불처럼 가벼운 내 몸은
항로 잃은 배가 되어 저녁 어스름
마지막 몇 점 빛의 다발에 퍼덕이며 가고 있다


*강선생님 한국에 언제 오실 예정이신지요. 오시면 꼭 연락 바랍니다.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5
전체:
6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