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2003.06.08 15:26
다림질 / 강학희
느슨히 담겨져
손을 기다리는 빨래감들
한 바스켓 빨아서
가슴 저 밑 이글거리는 불덩이 담아
기를 쓰며 문지른다
가는 목둘레에 아직도 눌려있는
긴장된 하루
올 풀린 소매 끝에 매달린 고단한
일상을 뜨거운 다리미로
밀어 버린다
구겨진 나 대신
너라도 반듯이 펴져라 힘껏 누르며
뻣뻣하게 달려드는 삶
너 보다도 더 빳빳하게 다려
가지런히 걸어둔다
빨래 다리다 말고
나를 다리느라
애꿎은 남편 바지 하나 태워 먹었다
벌겋게 데인 얼굴로
처연히 웃는 너
차마 버리지는 못하리
* 순수문학 시부문 신인상 2003 2.
*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문학 대 사전
작가 메모;
아무리 바쁜 일과라도 가능하면 집에서 물빨래를 하고, 모아서 다림질을 하는 건 다림질을 하면서 흐트러진 생각들을 더듬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다림질하고 있는 빨래감처럼 나를 깨끗히 빨고 다려서 빳빳하고 정결하게 걸어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산뜻하랴.
그냥 적당히 기계세탁하기보다는, 얼룩지고 때가 낀 낡은 부분들은 먼저 조물조물 손으로 주물러 손빨래를 한 후 뜨거운 열정으로 판판히 주름을 펴듯 우리도 각자 좋아하는 매체로 자신을 정화하고 정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인은 글로써, 음악가는 음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찢기고 상처난 마음들을 다독여 삶을 정화하듯, 우리 각자 선택한 자신의 매개체로 나 자신, 나의 삶을 재조명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다림질을 할 때면 뿌옇게 때가 낀 마음, 생각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정리 정돈해서 반듯한 그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순화하는 작업, 마치 글쓰는 작업과도 유사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다림질을 즐기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몸으로 신명나게 문지르고 나면 묵직했던 허리가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일그러지고 구겨진 내 생각에 밥풀을 먹이고 빳빳한 풀기를 살려 생각의 결에 따라 알맞는 온도로 꼿꼿히 눌러편 후 다시 다짐다짐해서 다른 생각들과 함께 가지런히 걸어두었다가 알맞은 날, 알맞은 때에 맞춰 떨쳐입고 나가는 일, 나의 다림질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아니 맡길 수 없는 일이다. 꼭 불가피하게 생각이 정돈되지 못할 때 익숙하고 편한 친구나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게 되 듯, 세탁소를 찾게도 되겠지만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한한 다림질은 손수, 아니 마땅히 내가 직접해서 늘 다림질을 내 손에 익히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나의 삶, 나를 다림질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테니까.
느슨히 담겨져
손을 기다리는 빨래감들
한 바스켓 빨아서
가슴 저 밑 이글거리는 불덩이 담아
기를 쓰며 문지른다
가는 목둘레에 아직도 눌려있는
긴장된 하루
올 풀린 소매 끝에 매달린 고단한
일상을 뜨거운 다리미로
밀어 버린다
구겨진 나 대신
너라도 반듯이 펴져라 힘껏 누르며
뻣뻣하게 달려드는 삶
너 보다도 더 빳빳하게 다려
가지런히 걸어둔다
빨래 다리다 말고
나를 다리느라
애꿎은 남편 바지 하나 태워 먹었다
벌겋게 데인 얼굴로
처연히 웃는 너
차마 버리지는 못하리
* 순수문학 시부문 신인상 2003 2.
*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문학 대 사전
작가 메모;
아무리 바쁜 일과라도 가능하면 집에서 물빨래를 하고, 모아서 다림질을 하는 건 다림질을 하면서 흐트러진 생각들을 더듬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다림질하고 있는 빨래감처럼 나를 깨끗히 빨고 다려서 빳빳하고 정결하게 걸어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산뜻하랴.
그냥 적당히 기계세탁하기보다는, 얼룩지고 때가 낀 낡은 부분들은 먼저 조물조물 손으로 주물러 손빨래를 한 후 뜨거운 열정으로 판판히 주름을 펴듯 우리도 각자 좋아하는 매체로 자신을 정화하고 정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인은 글로써, 음악가는 음악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찢기고 상처난 마음들을 다독여 삶을 정화하듯, 우리 각자 선택한 자신의 매개체로 나 자신, 나의 삶을 재조명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다림질을 할 때면 뿌옇게 때가 낀 마음, 생각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정리 정돈해서 반듯한 그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순화하는 작업, 마치 글쓰는 작업과도 유사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다림질을 즐기게 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몸으로 신명나게 문지르고 나면 묵직했던 허리가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일그러지고 구겨진 내 생각에 밥풀을 먹이고 빳빳한 풀기를 살려 생각의 결에 따라 알맞는 온도로 꼿꼿히 눌러편 후 다시 다짐다짐해서 다른 생각들과 함께 가지런히 걸어두었다가 알맞은 날, 알맞은 때에 맞춰 떨쳐입고 나가는 일, 나의 다림질을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아니 맡길 수 없는 일이다. 꼭 불가피하게 생각이 정돈되지 못할 때 익숙하고 편한 친구나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게 되 듯, 세탁소를 찾게도 되겠지만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한한 다림질은 손수, 아니 마땅히 내가 직접해서 늘 다림질을 내 손에 익히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나의 삶, 나를 다림질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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