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소묘

2003.06.08 16:03

강학희 조회 수:597 추천:35

하루의 소묘/강학희

1.알레그로*
좀체 끌러지지 않는 일상(日常)의 실타래
"그냥"이라는 이유로 싹뚝 자른다.
수신불가 일과(日課)는 유기된다.
안개 덮인 골든게이트 숲 속의 다실(茶室)
뽀얀 아침을 담아 느긋이 마시면
꼭 꼭 잠겼던 단추들 툭 툭터지며
너 나 없이 입던 다툼의 옷 날아가고
가슴으로 싸-아하게 바람이 들이친다.

2.안단테*
서두르지 않고 과거에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박물관 개표소 할머니의 "좋은 아침" 인사가
뜻대로 들리는 평심(平心)이다.
걸고, 끼고, 붙이는 건 인지상정인가
어제 사람들의 숟가락, 밥그릇보다 장신구들이
갇혀있는 방에서 한참을 붙들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끌려나온 미이라
그들의 의미와 우리들의 의미 사이에 길게 누워있다.
특별했을 삶이 아주 평범한 삶에 의해 농락되어
검은 눈물 자욱 점점히 얼룩져 있다.
오래 된 혼(魂)들이 머리를 잡아끄는 밀실을 딛고
천천히 아주 느리게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나온다.

3, 아다지오*
햇살이 쏟아지는 우리들의 거리
스케이트보드, 롤러 브레이드, 랩 뮤직에
흔들리는 오색의 머리칼로 흥건하다.
오늘의 진열장에 갇혀 있는 것들이 끌려나와
내일에 갇힐 희고 검은 손으로 옮겨다닌다.
아직은 아다지오로 흐르던 오늘도
네온 빛의 강약에 따라 악장을 바꾸며
전광판에서, 크리스탈 샨델리아 아래에서
아주 빠른 뎀포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열정의 연주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채 끝나기도 전에 그리워지는 반란은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알레그로:급속도로 빠르게 
*안단테: 보통으로 빠르게
*아다지오: 느리게

*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문학 대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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