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 있는 건 기타 등등 때문이다
2003.06.08 15:15
우리가 살아 있는 건 기타 등등 때문이다 / 강학희
쉬지 않고 달려오는 연륜(年輪)에 바래버린
흰 머리칼을 한 움큼씩 거머쥘 때
머리카락보다 가버린 시간에 더 목이 메는 건
지겨운 나날이라 욕지거리하면서도
아직은 더 살고 싶다는 증거
나이를 자연스레 받아서 겉보다 속이 더
아름다워야한다고 하면서도 이제쯤은
포기했어야 할 눈가 입가 주름살에
쌀보다도 비싼 영양크림을 바르는 건 속보다
겉이 더 잘 내보인다는 증거
때아닌 벗꽃 만개한 어느 집 앞 지나다
꼭 한가지만 꺾고싶어 안달하던 충욕이
돌아오는 길에 하얗게 떨어져내린 지상낙하가 안쓰러
때아닌 때 피는 꽃을 나무라는 건 계절마저
날 속이는데 열받는다는 증거
이렇게 이것 저것 못마땅해 투덜거리는 건
아직도 현존의 의미가 내포한 살아있음의 자아발견
이런 자주 잊거나 소홀해지는 기타 등등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우리 生의 의미가 반추된다는 증거.
* 미주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문학 대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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