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양말
2003.06.13 15:48
구멍난 양말 /강학희 빨래개키다 바닥에 구멍난 양말 한 켤레 보니 열 두 형제 양말 기웠다는 시누님 생각이난다 시조카와 동갑나기 남편은 그 중 열두 번 째 함지박 가득한 양말 전구 끼워 밤새 기우면 신 새벽이 홰치고 나무 한 짐 지어다 무쇠 솥 보리 밥 익을 때면 우루루 나서는 더벅머리 동생들 땟국 전 발에 양말 신고 학교로 가버렸지 산떠미 같은 빨래들 시린 손 호호 불며 치대면 구멍만 숭숭 뚫리는 원수같은 무명 양말들 뚝딱 저녁 한 술 뜨고 양말들고 꾸벅이면 또 하루가 갔단다 큰 동생 미국 갔다 사온 귀한 나일론 양말들 아까워 품기만 하다 쌀 팔기 위해 도로 내 놓아야했지 물기 젖은 음성으로 하시던 시누이 말씀 생각나 구멍난 양말 차마 버리지 못하고 꿰맨다 다발로 사서 기계가 빠는 시대의 내 아이 이런 모진 세월을, 형제애가 구멍 구멍 메운 양말을, 대물림한 책, 책가방, 헐렁한 교복을, 내 것이 아닌 우리 것을 이해나 하려는지... 필요 없는 것을 더 많이 지니고 사는 세상에서 궁핍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란 걸, 함께가 아니면 살이 되지 않는 사랑을 외 아들인 너에게 어찌 설명하랴.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시댁은 사촌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만큼 형제들만도 13남매인 대가족이다. 동란의 어려운 시절을 이 많은 식구들이 함께 넘었을 크고 작은 애환들을 들으면, 달랑 자매뿐인 나 자신과, 그 나마 누이나 아우도 없이 오독하니 혼자인 나의 아이에게는 꼭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 같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건 위로 누님이 셋이 있고 남자 형제들이 있기에 그 힘든 새월을 어머님이 지나오실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침 막내인 나의 남편은 그나마 누이들이 다 출가한 후에 큰 누님이 조카를 낳으실 때 같이 해산을 하시어 어머님과 누님들은 항시 막내를 애잔하게 바라보시고 막내 며느리마저 막내 딸처럼 잘 거두어 주시어 너무나 미안할 때가 많았다.... "어머님 예전엔 다 어찌 키우셨나요?" "키우긴, 다 지들이 컸지...." "하나도 속 안섞였으니 그 나마 먹고 입히고했제..." "요즘 아-아들 같지 않았지..." "그리고 그 땐 안생길 방법이 있었남..." "하나도 안 잃고 살아남은 건 기적이제..." "내는 젖도 잘 안나 염소 젖 받으러 댕기느라 애도 많이 끓였는디..." "암죽도 참 많이 끓였고..." 아이고 생각만해도 머리가.....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리고 형님!......" 하나인 아이도 버거운 내가 너무 미안하여, 힘들 때면 이미 작고하신 어머님과 차 한잔을 나누며 푸념 아닌 고마움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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