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2003.06.19 17:12
♤ 마음의 소리 / 강학희 ♤ 인간은 누구나 가끔씩 자가당착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빼도 박도 못한채 방금 전에 했던 생각에 대해서도 갑자기 의심이 생겨 지금껏 살아 온 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다. 이렇게 자기 모순에 빠질 때면 누구나 자기 마음의 소리, 나름의 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된다. 내게도 가끔씩 이런 어려움이 닥쳐 올 때면 어김없이 내 마음을 흔드는 소리, 아버님의 무겁고 힘찬 소리가 있다. 우리, 언니와 내가 3-4학년 경이었으리라. 매일 강요만 하는 융통성 없는 가정교사를 몰아내기로 작당하여 골탕을 먹이던 어느 날. 드디어 얌전이 선생님은 "남의 속 썩이지 말아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고, 그예 그 날 밤 아버님께 호출되어 호된 꾸지람을 기대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예상 외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너희들이 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으니 그 아픔은 내가 받아야겠구나!" 하시며 자신의 손바닥을 수 없이 내려치심에 우리는 너무나 당황하여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다가 "가서 쉬어라"하시는 말씀에 경황 없이 물러 나왔었다. 내 일생에 그 때의 아버님 모습이 가장 엄하셨던 모습으로, 그 때의 매가 가장 아픈 매로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다. 그로부터 무슨일에나, 마음의 방황이 있을 때면 내가 이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과연 아버님이 나 같은 딸을 가지심을 부끄럽게 생각하실른지를 먼저 생각한 후 결정하게 되었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날 까지도 음성을 높이시는 일이 없었음은 물론 이 꾸짖음 때문이었다고 확신한다. 칭찬은 꾸중보다 몇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사범대학 강의 시간에 수 없이 들었건만, 정말 화가 날 때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소리로 답한다는 건 현실에서는 너무나 힘이든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웃는 얼굴"이라고하니, 웃으며 얘기하는 습성을 길러야겠다. 특히 한국사람들 처럼 무표정한 경우엔 더욱 더... 서로 다른 이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두 문화권 안에서 어떻게 자아의식(identity)을 갖는 가 하는 것이고, 또 그 것을 어떻게 2세들에게 심어 줄 수 있는 가 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확고한 가치의 의식을 갖게 하는 양심의 소리을 갖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야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긍지, 한국인의 얼이란 것을 생활과 대화로써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약물(drug)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리의 양심을 좀먹어 들어가는 금전 만능주의, 기회주의에 대해서도 과감히 No라고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마음의 소리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게 이민 1세,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1987,6,12일 한국일보 금문교 컬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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