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와 아버지
2004.10.01 12:27
홍시와 아버지 / 강학희 어릴 적, 늦가을이면 시골 선산에서 가져온 발그스름한 꼭지감들 광주리에 가득 담 아 가을이 익도록 옥상 방에 두었다가, 한 겨울 살얼음이 살짝 얼어 이가 시리도록 차가 운 홍시를 따끈한 방에서 재잘거리며 식구들과 나누어먹던 달디단 기억.그 때 나는 매해 선산에 가시는 아버님을 따라가고 싶어 몇번씩이나 데려가달라 다짐을 받곤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골의 감 나무 아래서 놀던 재미가 얼마나 좋았던지... 나무마다 빨갛게 물든 감 밭은 서울에서 살던 내겐 참 재미난 시골구경이었다. 열 살 때부터 간땅꾸라 불리던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미리내 선산으로 가던 나들이는 하도 눈에 선해서 생각만 해도 그 때 나이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지금은 한국 카톨릭 교회의 성지가 된 산 끝 동네, 미리내는 그 성지 앞이 전부다 감밭이었다. 선산인 그 곳에 우리가 보이면 벌써 멀리서 달려오시던 시골 산지기아저씨, 늘 일하다 나오시기 때문에 흙투성이라, 처음 뵐 때 나는 속으로 시골 사람들은 세수도 안하고, 손도 안 닦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다.그 아저씨에 게는 가슴 아픈 아들, 정박아인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님은 늘 서울에서 그아이에게 줄 옷과 과자들을 챙겨 갖다 주셨다. 그 아저씨는 "아이구우-! 무슨....번번이, 죄송합니다!" 얼굴이 빨개지셔서 미안해 하셨지만 아버님은 항상 손수 그 방으로 가셔서 물건을 직접 그 아이에게 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셨다. 아버님 등 뒤에서 고개만 내놓고, 처음 그 아이, 바오로를 봤을 때 나는 문득 걔가 꼭 거미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도 그 아이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가 다 제멋대로 놀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얼굴 이 삐뚤어진 그 아이는 입을 실룩이며 웃으려고 하면 할 수록 이상하게 더 울려고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아저씨 내외는 무척이나 부끄러워하시고, 또 내가 무서워 할 까봐 나를 잡아 당기셨지만, 왠지 난 그 아이가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고, 하얀 얼굴이 꼭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아 나까지 눈물이 핑 돌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참 궁금한 것이 그 아이의 삶이다. 내가 대학교 졸업 할 때까지 그 아저씨 내외가 잘 돌보았지만, 아버님 사후 그들의 소식도 그 아이의 소식도 잘 알지 못하 게 되었고 선산에 갈 때면 그들 생각이 나고, 내가 누렸던 풍족함들이 미안한 느낌으로 다 가 온다. 그렇게 아버님과 내가 선산에 도착하면, 시골 어르신들이 오시어 안주상을 벌리시 고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시며 술잔을 권하기 사작하시면 나는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나와 뒤란으로 나가 감나무 밭으로 가곤했다. 걔네 엄마는 옷 더럽히면 어떻게 하시냐며 따라와 나를 말려도 막무가내로 감나무 밭에서 깡충거리며 꽃들을 꺾고 감들을 바라보며 뛰어 놀았 었는데 왜 그리 재미가 있었는지.... 한번은 멀리서 올라 오시는 아버님을 보고 나는 신나서 뛰어가 "아빠! 다 빨갱이네!" 했다가 그런 말은 쓰면 안된다고 무척 야단 맞은 빨간 세상의 기억, 그 것이 내 유년의 감나무 밭이다. 그 때는 빨갱이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듣던 시절이라, 나도 몰래 빨갛다는 "빨강이네"를 자연 그렇게 발음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그 때 어른의 빨강 이념과 아이의 빨강 이념의 차이를 이해 할 나이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빨강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사용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으리라. 실은 빨강이라는 색갈이 우리 인생에서 상당 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걸 그 때 아주 확실히 배웠어야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빨강 하면 피난시절 부산 대청동 언덕에서 바라보던 빨갛게 타오르던 국제 시장의 불, 지금도 지울 수 없는 붉디붉은 첫사랑, 화로 속에 감춰둔 불씨 같이 간간이 살아나 절로 부끄러워 지는 새빨간 미움, 한번 찍으면 절대로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 빨강 인주 같은 돌이킬 수 없 는 실수, 쓰고 싶어 불꽃처럼 늘 타올라도 제대로 표현 할 수 없는 시뻘건 괴로움 등등.... 여하튼 빨강이라는 색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늘 문제의 색갈인 것만은 확실하다. 동시에 우리 인생에서 없으면 결코 삶의 맛과 멋이 생기지 않는 귀한 색, 그래서 더 더욱 함부로 쓸 수 없는 색이 빨강색인 것 같다. 나는 그 때 감을 터는 사람들에게 늘 "감은 넉넉히 남겨 두어라" 이르시던 아버님이 참 못마땅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왜 그런가?"하고 물었었다. 그 때 아버님은 배고픈 새 가 올 것이라고 하셨고, 나는 어렴풋이 그 곳은 새가 참 많은 곳인 줄만 알았었다. 한번도 배를 골치 않았던 내가 새나 사람이나 다 배고픈 시절이었다는 걸 어찌 알았으랴... 이즘 이야 모두들 가을이면 아마가끼라 불리우는 단감들을 더 많이 먹지만, 나는 매해 가을이면 지금도 뾰쪽한 삼각 꼭지감들을 여러 상자 사다, 더러는 눈으로 먹기 위해 창가에 줄지어 세워두고서 쪼그라지도록 가을을 바라보고, 나머지 것들은 커다란 항아리에 사과 몇 알을 함께 넣어 한동안 놓아 두어 감들이 쪼그라들지도 떫지도 않게 잘 익혀둔다. (친구 시인에 게서 홍시를 잘 만드는 이 비결을 배운 후에는 많은 감들을 잘 익히게 되었다.) 그 홍시들을 하나 하나 비닐 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 가을이 가고 겨울,봄 여름까지 내내 속이 헛헛하고 홍시가 그리운 날이면 한 알씩, 한 알씩 꺼내어 고운 접시에 놓고 해동하기를 기다리며 나의 기억들을 만난다. 여름 홍시에서 가을을 만나고,그 가을에 서 아버님의 깊은 마음을 만난다. 정작 가을이면 홍시를 심어 겨울, 봄, 여름동안 나의 감 나무에서 홍시를 따먹으며 다시 올 가을을 준비하는 셈이다. 이제 나도 아버님의 나이, 내 유년의 감나무들을 보며 여태껏 내가 먹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먹었던 것은 누구 의 밥이었을까 곰곰 생각해 본다. 누군가의 까치 밥이었을 빨간 홍시를 먹으며, 이 한해를 얼마나 감사 없이 살았는지 미안한 마음이 되어 나의 것을, 나를 누군가의 까치 밥으로 내 놓고 살지 못했던 나를 들여다 본다. 내가 매달려 있는 삶의 나무를 다시 한번 휘 둘러 보 게 된다. 내 가지에 열려있는 열매나 잎새, 혹은 몸통, 어느 것 하나도 선뜻 내 놓을 수 없 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뿌리를 들여다 보며 반성한다. 웰빙(well being) 시대인 요 즈음은 감보다 감잎 차를 더 많이 즐기는 시대라는데...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풍성히 키 운 감나무로 누군가의 까치밥이 되기를 바래보며, 새파란 하늘에 까치 밥 몇 개 걸린 감나무 같은 11월 달력 속의 내 남은 날들을 짚어본다. 몽클, 몽클, 가슴에 붉은 인장을 찍는 홍시 가 너도 다음 가을까지 누군가의 까치 밥으로 끝내 매달려 있어라 한다. 홍시와 아버지 그리고 나 / 강학희 홍시는 해마다 그 해마다 더 붉고 싶어 꽃눈 꼬옥 감고 햇살, 바람, 안개, 이슬들을 애무하노라면 어느새 사르르 몽그라지는 속살 단물 흥건한 붉은 가슴이다 그 잘 익은 홍시는 튼실히 자라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보내진 뜻대로 쓰이길 바래는 내 아버지의 마음, 나는 아직도 그 밭에서 자라는 유년의 감나무 오늘도 잘 익은 홍시 까만 젖꼭지 떼고 흐믈어져 끝내 매달렸다 누군가의 달디단 살이 되었다 붉은 인장을 찍는데... 나는, 나는 더 붉고 싶다 붉고 싶다 끝내 꼭지를 놓지않는 새파란 땡감, 해마다 그 해마다 더 붉고 싶어 홍시는 물러가는데 왜 가을은 나를 익히지 못하는가 무르지 못하고 얼굴만 붉은 떫어 탱탱한 부끄러움아, 아- 내 가을아. -2004년 시월 초 하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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