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막골에서
2003.08.06 19:15
여름 산막골에서 / 강학희
산과 들과 강, 그리고 사람
모든 것이 본래 모습대로인 산막골에선
도시 사람이 바보가 된다
더 이상 잘 그릴 수 없는 들꽃과 산딸기 덤불
더 이상 진솔 할 수 없는 강물 깊어지는 소리
그저 보기만 하는 화가
그저 읽기만 하는 시인이 된다
눈을 감아도, 손을 거두어도
절로 마음에 그려지고 새겨지는
휘어진 소나무는 그대로 완성 된 산수화
섬을 쓰다듬는 물소리는 만개한 시詩다
이 여름, 품이 깊은 산막골*은
청평산방 안에 든 사람의 머리를 뭉갠다
들이는 것, 버리는 것이 무언지
콩크리트 같은 가슴을 가르며 묻는다
산과 들과 강, 그리고 사람
모든 것이 본래의 모습대로인 산막골에선
도시 사람이 가난해진다.
*산막골:소양강 넘어 춘천시 북산면에 있는 산골마을
여름 산막골에서의 후기
일상을 버리고 자연 앞에 섰을 때,
세상 속에서 참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붙잡고 있던 것,
그 어느 것 하나도 실은 내게 소용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포근한 어머니의 품처럼 말없이 편안해지는 느낌...
어느 날 잊어버렸던 그 평안이 돌아와 앉는 심정이었지요.
푸르름...
물도 산도 나무도 작은 들풀도 각자 제 모습대로
제 색갈대로 어우러져 있음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도 각각의 색갈, 각각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기만 한다면 정녕 아름다웁게 엉켜들텐데....
무엇이 그 걸 힘들게 하는 걸까.....
그 건 아마도 내 것과 네 것의 비교원리 사고방식 때문은 아닐까....
고뇌 할 수있는 두뇌를 주시어 만물의 영장이 되긴 하였으나, 그 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끊임 없는 고통 속을 해메이는 건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는 것, 나이를 먹어 가는 것,
그 것은 이러한 깨우침으로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
그 본래의 모습대로 받아 주는 것,
서로의 아름다움을 보아줄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산막, 깊은 골에 머리는 두어 두고, 가슴만 안고 돌아와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있는대로 조건 없이 받아주는 아름다움만을 가지고 돌아오고 싶었던 게지요.
우린
큰 나무 밑에 옹기종기 돋아 있는 그 작은 들풀만도 못한 것을....
그 아련한 꽃향을 오래 가슴에 담고,
종종 힘들 때면 꺼내어 보며 기억하고 살아가고 싶은
이 여름의 기행은
무척이나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태평양을 넘어 오는 긴 여정에서 들풀보다도 더 작은 우리의 마음을 모아
자연의 품처럼 푸근함으로
고운 사랑이라는 무늬를 수 놓아 갈 수 있기를.....
그 산막의 깊은 골 바람으로, 빗방울로,
보라빛 꽃으로 오신 그 분의 소리를 놓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돌아 오는 길은 전혀 멀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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