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도 추락한다

2004.05.31 03:47

강학희 조회 수:448 추천:39

날개를 달아도 추락한다 / 강학희


광안리 "해인 글방" 앞 삼거리  
한 줄 획을 그으며 털썩! 떨어진 물체 
어이없게도 
날개 달린 작은 새 한 마리다. 

무릇 뼈 속마저 비우고 
바람의 길을 간다던 날짐승을  
아스팔트 날바닥으로 
곤두박질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털썩! 철퇴 소리 
오늘도 먹이 무는 소리 추 되어 
최소한과 최대한의 잣대 위에
그 한 점 놓아보란다 
심보의 무게를 묻는다

좀더 높이였든지, 좀더 빠르게였든지   
혹은 한 점 더 삼킨 비축이나 쾌락이었든지 
마지막 수위를 넘긴 
그 한 점, 욕심의 중량重量 추락을 부른다 
천의 날개도 부순다.


시작 메모:

작년 봄, 해인 수녀님과의 반가운 해후는 도심 안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한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수녀님이 끓여 주신 향긋한 다향처럼 향기로운 
수목이 그득한 수도원은 찬란한 햇살, 나비들만 꽃 속에서 춤을 추는 소리 없는 고요가 
평안 그 자체였지만, 그 평안은 사바에서 온 나에게는 슬픔처럼 싸아했다. 

그 때 고요를 깨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로 직선을 그으며 떨어지던 검은 물체, 
뭐지?... 수녀님과 서로 바라보곤 다가가보니,  세상에... 어이없게도 한 마리 작은 새였다. 
널브러진 새, 새가 졸도를 한 거였다. 세상에... 새가 졸도하고 땅으로 떨어지다니...
새가 깨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 공중에서 날던 새가 저 혼자서 추락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그 새는 말없이 내게 참 많은 말을 하고 떠났다. 잊을 수 없는 새와의 
만남, 아니 새가 사람이 된 만남이었다. 아니 사람이 새가 되었나...새만하지도 못한 사람. 
모든 게 모를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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