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도 추락한다
2004.05.31 03:47
날개를 달아도 추락한다 / 강학희 광안리 "해인 글방" 앞 삼거리 한 줄 획을 그으며 털썩! 떨어진 물체 어이없게도 날개 달린 작은 새 한 마리다. 무릇 뼈 속마저 비우고 바람의 길을 간다던 날짐승을 아스팔트 날바닥으로 곤두박질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털썩! 철퇴 소리 오늘도 먹이 무는 소리 추 되어 최소한과 최대한의 잣대 위에 그 한 점 놓아보란다 심보의 무게를 묻는다 좀더 높이였든지, 좀더 빠르게였든지 혹은 한 점 더 삼킨 비축이나 쾌락이었든지 마지막 수위를 넘긴 그 한 점, 욕심의 중량重量 추락을 부른다 천의 날개도 부순다. 시작 메모: 작년 봄, 해인 수녀님과의 반가운 해후는 도심 안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한 부산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수녀님이 끓여 주신 향긋한 다향처럼 향기로운 수목이 그득한 수도원은 찬란한 햇살, 나비들만 꽃 속에서 춤을 추는 소리 없는 고요가 평안 그 자체였지만, 그 평안은 사바에서 온 나에게는 슬픔처럼 싸아했다. 그 때 고요를 깨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로 직선을 그으며 떨어지던 검은 물체, 뭐지?... 수녀님과 서로 바라보곤 다가가보니, 세상에... 어이없게도 한 마리 작은 새였다. 널브러진 새, 새가 졸도를 한 거였다. 세상에... 새가 졸도하고 땅으로 떨어지다니... 새가 깨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 공중에서 날던 새가 저 혼자서 추락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그 새는 말없이 내게 참 많은 말을 하고 떠났다. 잊을 수 없는 새와의 만남, 아니 새가 사람이 된 만남이었다. 아니 사람이 새가 되었나...새만하지도 못한 사람. 모든 게 모를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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