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을 분재(盆栽)하며...

2004.07.26 11:39

강학희 조회 수:635 추천:50

난(蘭)을 분재(盆栽)하며.../ 강학희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꽃잎지고 잎새마저 시들면 꽃 보던 마음도 시들어버린다
그러나 오랜 방치 후 시든 잎 사이로 뻗는 하얀 발가락 저 것은 목적만 끝나면 버려지고 갈아지는 단單생을 밟고 일어서는 함성이다
모든 빛나는 자리는 제 생을 걸고 흘린 눈물자리를 깔고있다 뉘라, 후광 속 진자리를 보지않고 고운 얼굴만 보자하는가?
살다 힘든 날은 솟대 하나 올리기 위해 핏물을 뽑아내는 꽃을 들여다 보라 내 날을 피우기 위해 저토록 붉지않으면 울지 말 일이다
소망이 꽃이 되는 것은 꽃을 지우고 난 몸에 다시 꽃을 달아 본 생명만이 안다 제 살을 찢어 나누어도 꿋꿋한 건 그 꽃을 믿기 때문이다.


시작 메모:

귀한 난(蘭)을 사다 잠시, 잠시 꽃만 보고 그녀를 보내어도 그닥 불편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둑한 차고 안에서 등이 하얗게 버혀지도록 애쓰다 파르스름한 뿌럭지 두어가지를 내미는 생명을 보며, 우린 결코 한 생을 살기 위해 이렇게 몸트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들여다 함께 앓으며, 앓으며 바라다보니,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린 그저 번져내는 빛만 으로도 소통 할 수 있었다. 지금 나 힘들어 좀 씻어 줘, 오늘은 조금 더 어둑한 곳에 있고싶고, 오늘은 조금 더 시원한 곳에서 좀 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구,... 어느 날은 말없이 바라만 보아도 좋고, 어느 날은 웃으며 쓰다듬고싶고...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즐거움 속에서, 난(蘭)은 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꽃을 지우고, 다시 지순한 인고의 시간을 살아내는 그녀의 삶을 보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그녀는 제 목울음 같이 짙기도하고 옅기도한, 분홍 꽃을 피우기위하여, 기다란 목대 에 꽃순을 튀웠고, 처음 내게로 올 때보다도 더 아름다운 얼굴을 들었다. 이제 무거운 몸을 가르며,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보내고싶다. 함께 눈빛을 맞추는 사랑에게로. 보기좋은 걸 곁에 두려고 하는 것은, 우리도 누군가에게 보기 좋은 사람이 되고싶기 때문은 아닐까?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기 위하여...나도 잠시 얼굴만 보는 겉 치장이 아닌, 고통과 함께 피는 네 삶 안의 꽃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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