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2005.06.12 02:00

강학희 조회 수:575 추천: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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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비 / 강학희


  • 웬 전언 이리 급한가

  • 후둑거리는 밤비의 걸음

  • 줄줄이 하늘 길을 뛰어내려

  • 뿌연 외등 혼자 지키는 세상 길을 간다

  • 처마 끝 낭떠러지로, 매끄런 유리 절벽으로,

  • 폭신한 목련길이든 뾰쪽한 솔松길이든

  • 뚜룩 뚜룩, 또록 또록 어느 길도 마다 않고 간다


  • 잘났다 저 혼자 더 빨리 지름길 찾지 않고

  • 손발을 합쳐 몸을 공 굴리며

  • 미는 대로, 업힌 채로, 앞서고 뒤따르며

  • 합하지도 못하고 뒹굴던

  • 먼지 살마저 안고 간다


  • 어디도 모난 곳 없는, 어디도 감춘 맘 없는

  • 환한 속 들여다보니 길이 있어 가는 게 아니라

  • 제 몸 터트려 물 자리 만들며 가는구나

  • 토르륵 토록 맑은 게 제 눈물이었구나

  • 만사 맘 길 안에 갈 길이 있었던 걸

  • 물길 뚫고 가는 밤, 빗길이 환하다.





(해외문학  2006년 )에서

바다 건너에서도 피는 모국어의 꽃
- 꽃은 아름답고, 별은 신비한 것처럼 시는 여전히 위대하다. -    

                                                                                                         (시인 평론가)  박영호

다음은 자연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되는 물과 빗물의 몸짓을 통해서 생의 바른 길을 찾아 가는 시인의 가치 있는 영안(靈眼)의 명상 세계를 밝힌 아름다운 서정시다.

(전략)
잘났다 저 혼자 더 빨리 지름길 찾지 않고
손발을 합쳐 몸을 공 굴리며
미는 대로 업힌 채로, 앞 서고 뒤따르며
합하지도 못하고 뒹굴던
먼저 살마저 안고 간다.

어디도 모난 곳 없는, 어디도 감춘 맘 없는
환한 속 들여다보나니 길이 있어 가는 게 아니라
제 몸 터트려 물자리 만들며 가는구나
또륵 또르륵 맑은 제 눈물이었구나
만사 맘 길 안에 갈 길이 있었던 걸
물길 뚫고 가는 밤, 빗길이 환하다.
                               (강학희 '밤비' 일부 『미주문학』2006 겨울)

  어둠 속에서 내리는 밤비 소리를 들으며 물은 덕(德)이고 길이며 그 덕은 바로 만물의 도(道)라는 노자의 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세계를 표현한 시다. 물의 순리가 자연의 순리이고 물의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의 순리일 것이다.  
이러한 물의 몸짓을 통한 길 만들기는 자연과 그리고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생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빗물이 어두운 땅 위에 스스로 길을 내고 흐르는 모습을 심안(心眼)으로 보면서, 골똘히 사색의 세계에 잠겨 빗물들이 방울방울 서로를 내 살처럼 끌어안고 하나로 조화되어 스스로 길을 내면서 바른길을 찾아가는 물길을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생각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의 바른 도리이며 바른 몸짓이라는 것이고, 자신도 그 물길처럼 지혜로운 몸짓으로 살아가리라는 바른 생에 대한 자세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생도 물의 순리나 도를 따라서 스스로 길을 내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결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더욱이나 그것이 자신만을 위한 개인적인 사색보다는 물의 근원적인 순리인 생명과 사랑과 봉사,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나 인류평화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서, 시인의 사색의 세계가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물길 뚫고 가는 밤, 빗길이 환하다.'
결국 물의 지혜로움으로 인해 내가 속해 있는 현실세계나 다름없는 이 밤에 빗길이 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밝은 미래에 대한 시인의 소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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