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는 발가벗어도 아름답다

2008.11.07 02:45

김희주 조회 수:439 추천:31

겨울나무는 발가벗어도 아름답다(중앙일보. 오피니언)김희주  
글쓴이: kimheejooh 조회수 : 81 07.01.14 23:58 http://cafe.daum.net/bntu3/Co0u/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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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겨울나무는 발가벗어도 아름답다






새해 인사를 드릴 곳이 있어서 터스틴 쪽으로 한참 달리고 있는데 도로 한 가운데 저녁 노을을 받으며 일열로 나란히 서 있는 발가 벗은 겨울 나무들을 보면서 '아! 참 아름답다.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저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았으면 ...' 하는 마음이 들었다.

꽃을 좋아해 화원에 들르면 몇 시간이 지나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이 꽃 저 꽃에 마음을 뺏기다가 한 두 그루 사다 심어 놓곤 그 꽃이 다 질 때까지 드려다 보곤 하지만 이렇게 볼 것 없는 겨울 나무는 아예 춥고 쓸쓸하고 보잘 것 없다는 고정 관념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의 겨울 나무는 잎은 다 떨어지고 없었지만 쭉쭉 팔을 뻗어 힘차고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가지 사이로 비치는 저녁 노을 빛은 정말 인생의 겨울길에 접어든 나에게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다.

또 산이나 들이나 도로변이나 어디든지 마다 않고 심어진 그 땅에서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여 최선을 다 하여 삶을 지탱하는 그 모습에서 우리 이민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날 큰 아들이 대학교 다닐 때였다. 기숙사의 한국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하고 있는데 참 가슴 뭉클한 얘기가 들렸다. "야 우리 부모님들 대단하시지. 영어도 한마디 못하시면서 이 미국 땅에 오셔서 우리들 대학공부 시키시고 남 부럽지 않게 사시는 걸 보면 보통이 아니시지?"

나는 속으로 울음을 꿀꺽 삼키며 "고맙다. 그래 더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 줄께." 다짐하며 아이들의 이 말을 가슴 속에 늘 간직했다.

어느 새 아이들은 잘 성장하여 좋은 직장 행복한 가정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까지 안겨 주었다. 아들은 아직까지 직장 생활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려 직장 그만두고 쉬라면서 일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충분히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퇴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니다 아직은 나도 더 당당히 저 겨울나무처럼 남은 삶 버티어 나갈 수 있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요즘은 주위에서도 자녀들 다 제 갈 길 가고 나뭇잎 떨어져 나간 겨울나무이지만 벗을수록 더욱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분들이 많아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20대 젊은 나이로 유학와 이제 칠순에 접어든 분들이 내 뿌리를 찾겠다고 한글사전 찾아가며 열심히 공부해서 문인으로 등단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보람있게 사는 모습이 발가벗어도 아름다운 겨울나무를 보는 것 같아서 참 아름답다. 이런 겨울도 다 지나고 '그 분'께서 부르셔서 속속들이 발가벗겨 심판받는 날 '참으로 아름답게 잘 살고 왔다'고 칭찬받기 위해 하루 하루를 곱게 곱게 보내고 싶다.

김희주.시인          신문발행일: 20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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