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위로 띄우는 글

2008.11.07 05:31

김희주 조회 수:467 추천:35

   태평양 위로 띄우는 글

                                         김 희 주 (시인)

  어느 시인이
“ 해는 지는 해가 아름답고, 사람은 떠나는 뒤 모습이 아름답다.”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난다.
42년 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이제 막 떠나려는 이 숙자 교장 선생님의
뒤 모습은 하루 일을 끝내고 꼴깍 넘어가는 저 붉디 붉은 저녁 노을 보다
더 아름답게 모든 이들의 가슴에 채색되고 있다.
“사람은 만날 때 보다 떠날 때 더 아름답게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는
이 교장 선생님의 속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40년 넘은 친구이기에
아쉬움보다 커다란 마음의 꽃다발을 안겨 주고 싶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오랜 세월 전에 우린 여고 동창생으로 만나 선생님이 되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고 싶어 부산교육대학에서 교육 이론을 공부하고 도심지 학교와 농촌 학교를 두루 거치는 교생 실습을 하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하나의 못이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줍겠다는 각오로 페스탈로치를 닮으려고 애썼다.
열정만으로 뛰어 든 교직생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배 부른 학생보다 배 고픈 학생들이 더 많았고 산꼭대기의 판자촌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20대 초반의 병아리 여교사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옥수수로 만든 급식 빵으로 허기를 채우던 아이들, 미술시간엔 크레파스와 도화지가 없어 선생님 눈치만 보던 아이들, 가정불화로 부모가 다 떠나버린
집에서 할머니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만 글썽이던 아이들, 육성회비 미납금이 많다는 이유로 교장실에 불리어가서 학반 실정을 일일이 말씀 드려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가르치는 일 보다 몇 배 더 힘들었던 생활지도, 특수아 지도 그래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격려해 줄 친구가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왔다. 아이들에 관한 일이라면 밤낮없이 같이 걱정하고 의논하며 전심전력을 쏟았던 티없이 맑은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 이 숙자 교장 선생님의 이 자리가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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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유로 중도에서 교직 생활을 접고 지금 이 미국 땅에 첫 발을 내 딛으며 낯 선 아파트에 이민 짐을 풀고 며칠 되지 않은 날 밤 꿈을 꾸었다. 우리 반 학생들을 두 줄로 세워 놓고 “앞으로 나란히! 차려! 경례!” 하며 구령을 하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하이얀 천정에 매어 달린 전등이 낯 설었고 서러웠다. 지난 일 다 훌훌 털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야 될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난 떠나 온 우리 반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라 잠을 설친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속으로 ‘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선생님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20년도 채 못된 교직 생활의 인연은 이렇게 질기기만 하여 교포 자녀들을 위한 한글 학교와 주말 학교에서 한국식 학예회도 하면서 그 끈을 이어 갔었다. 이제는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한국교육계를 서성이고 있다. 내가 이럴진대 이 숙자 교장 선생님은 그야 말로 만 20세에서 60세를 넘긴 오늘까지 몸과 마음 전부를 오직 부산 교육을 위해 헌신해 왔다. 일선 담임 교사에서 장학사로 관리직으로 행정직으로 다시 일선 관리직으로 정말 다양한 교직 경험을 누구보다 많이 해 온 이 교장 선생님 이 끈을 놓아 버리기엔 너무나 많은 후유증이 따르리라 걱정했는데 너무나 차분히 하나씩 매듭을 지어가며 준비된 퇴임을 계획하고 있어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다.
마지막 마무리를 아이들과 같이 생활 하고 싶다는 그 꿈 하나씩 이루어 가며 벌써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 오니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 얼마나 바쁘겠는가?
입버릇처럼 “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 아깝겠는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데 …”  온통 그의 마음은 늘 아동 교육에 푹 젖어 있었다. 퇴임을 앞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은 한 가지 일이라도 더 마무리 하고 싶어 마냥 바쁘기만 하다.
어렵사리 만나게 될 때, 전화로, 이 메일로 들어 온 이야기는 온통 학교와 선생님과 학생들이 그의 전부였다.
얼마 전에 받은 한 통의 편지 글
“ 친구야, 이곳은 벌써 장마철에 접어 들었다. 큰 일이다.
학생들을 밖으로 내 보낼 수 없으니 선생님들이 여간 고생이 아니다.
참 걱정이다.”
어느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이런 속 마음을 알겠는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 깊은 곳에 꼭꼭 묻어 둔 숙성된 김치 같은 인간미 난 그저 할 말을 잊었다. 아! 행복한 선생님들, 이 말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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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숙자 교장 선생님의 이런 숨은 모습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깊은 밀림 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츄프라카치아’ 란 음지 식물이 생각 났다.
공기 중의 소량의 물과 햇빛 만으로 살면서 누군가 한번 손대고 가 버리면 시들어 죽어 버리지만 처음 손 댄 사람이 오늘도, 내일도 손 대어 주면 계속 살 수 있는 영혼과 사랑을 먹고 사는 꽃,
이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부산교육이 시들어 버릴까 노심초사하며 매일 매일 손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사랑을 부어 가며 부산교육의 꽃을 키워 왔다. 이제는 조용히 그 손을 내려 놓고 또 다른 꽃을 피울 새로운 손과 악수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벅찬 시간인지 모르겠다.
      
얼마 전엔 L.A에서 2천 마일 떨어진 유타주의 파웰 호수 ( Lake Powell ) 라는 곳에 갔다. 6천 5백 만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이루어진 그랜드캐년의 상류에 위치한 186마일이나 되는 큰 호수인데 멀리서 볼 땐 물결이 잔잔한 평화스러운 호수에 가장자리를 에워 사고 있는 수직 바위가 형형색색으로 듬직하게 둘러 져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 위에 나가 보니 그렇게 잔잔하게 보이던 물결은 삼각 파도를 이루며 쉴 새 없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평생 몸 담고 있던 교직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친구 생각을 했다.
출렁이는 물결은 지금도 많은 변화를 꿈꾸고 있을 부산 교육이요, 그 가장자리를 수직 바위로 막고 서 있는 저 모습,
아! 바로 내 친구 이교장의 모습이구나.
참 고생했다.
겉으론 그 바위 아름답고 멀쩡했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금이 나서 쩍쩍 갈라져 있고 펑펑 구멍이 뚫려져 있었다.
친구야, 너의 가슴이 여기에 있구나. 나에게 보여 줄려고 이렇게 서 있구나.
보람 있는 일 하나씩 이루어 낼 때 마다 남 모르는 노력과 고통이 있었겠구나. 그래, 힘 들었지? 이젠 좀 편히 쉬려므나.
“그런데 이상하지?”
사람들은 파도가 세면 셀수록 바위 모양이 많이 찍히고 금이 가고 깨어 질 수록 뚫린 구멍이 많으면 많을수록 멋지다고 환호성이다.
잘 하면 아무 말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못 했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잘 버티어 나온 친구야, 고맙다.

이제는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폐품조각이나 주변의 잡동사니를 수집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마술사 같은 선생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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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고 컴퓨터에 앉아 클릭만하면 온갖 화려한 정보가 와르르 쏟아지는 행복한 학생들을 가진 우리 선생님들 잘 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애쓰고 걱정하고 노력한 보람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학교와 가정간의 관계를 회복하자는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고 어느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학교측에 ‘사랑의 회초리’를 전달 하는가 하면
어느 학교에선 학부모를 초청한 공개 수업에서 학생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부모님께 낭독하는 진솔한 일기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부모님의 발을 씻겨 드리는 세족식 등 부모와 자녀 학교와의 관계가 아름답게 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자나깨나 이 교장선생님처럼 한국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고 고심해온 분들의 마음이 하나 하나 전달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 교육의 미래는 밝아 질것을 확신한다.

이제는 모든 걸 훌훌 털고 그 동안 소흘 했던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 가서 건강하고 보람 있는 은퇴 생활 꾸려 나가기를 바라며 오늘 날 까지 걸어 온 훌륭한 그 걸음 하나 하나에 박수를 보내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퇴임에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날들 이제는 보람으로 영글었으니 행복하기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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