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과 참기름

2008.12.08 01:17

김희주 조회 수:718 추천:55




     간장과 참기름

                               김 희 주

저녁 반찬을 만들다 참기름이 필요하여 찾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늘 사용하는 것이고 큰 통은 쓰기 불편하여 중간크기의 참기름 병에 따로 부어 놓고 편리하게 쓰고 있다. 음식을 만들다 말고 참기름 찾느라 소동을 벌이다가 어디 엔가에 있겠지 하고 큰 깡통을 따서 사용하였다. 불편함이 이만 저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부엌은 나 혼자 쓰고 특히 한국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나뿐인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며칠 전에 싱크대의 수도관을 고친 일이 생각났다. 그 쪽의 캐비넷 속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어 부엌 바닥에 늘어놓고 작업을 하던 남편이 어디엔가 버린 것 같다. 한 번 물어 봐야 겠다 고 생각하다가 그냥 며칠을 잊고 지냈다. 양념통이 있는 캐비넷 속의 간장병에서 이상하게 고소한 냄새가 나서 참기름과 함께 있었으니 당연히 고소한 냄새가 배었을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음식을 만들다 간장이 필요하여 간장병을 열었더니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심상찮아서 햇빛에 간장병을 비추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검은 간장 위에 투명한 참기름이 뚜렷한 경계선 위에 둥둥 떠 있지 않은가?

그러면 그렇지 또 이 사람의 짓이구나? 어처구니가 없다. 그만큼 내 물건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이르고 일렀건만  이번에도 딱 들켰다.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음식 만들면서 참기름 한 방울도 아끼느라 병 주둥이에 묻어 있는 몇 방울의 기름도 아까워 혀로 날름 닦아 먹곤 했는데 두 달도 실컷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참기름을 못 쓰게 했으니, 그리고 그 많은 양의 간장은 어떡하고…

언제든지 필요한 게 있어서 쓸려고 찾다가 없으면 이 사람이 버린 게 몇 번이나 들통이 나서 버릴 때는 나한테 확인 하고 버리라고 당부당부 하는데도 이번에도 또 이런 일을 저질렀다. 요즈음은 없어졌다고 따지면 아예 모른다고  시침을 뗀다. 남자들 눈에는 필요 없어 보이는 것도 살림을 살다 보면 구질구질 한 것 같아도 다 쓰임새가 있고 없으면 여자들에겐 불편한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오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다가 문득 그날 하루 종일 홈디포에 쫓아다니며 싱크대 아래쪽에 상반신을 구겨 넣고 천정을 보고 누워 고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 먹다 남은 송편 몇 개 먹고 하루 종일 고생한 것 생각하니 “그래, 먹다 남은 참기름과 간장 반병이 무슨 대수냐? 그 날 사람을 불러서 고쳤으면 일당 3백 불은 날 아 갔을 텐데 참기름 30병은 건졌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가기로 하자.

지내 놓고 보니 쫑알쫑알 대지 않고 참은 게 참 다행이라 생각 된다. 만약에 따지고 물었으면 나는 아까운 것 버렸다고 짜증을 내었을 거고 정작 본인은 실컷 하루 종일 고생하며 싱크대 고치고 나니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마누라의 바가지에 시달렸으니 기분 좋을 리도 없을 뿐 아니라, 지나 간 것 자기가 버린 품목 일일이 따지면서 뭐도 버렸고 뭐도 버렸고 하면서 묵은 일 다 들춰내면서 싱갱이를 했으면 며칠은 집안에 냉기가 돌았을 텐데 마음 하나 돌려 생각하니 만사가 다 편안 해졌다. 지금도 남편은 간장병에 참기름 넣은 사건을 모른 채 마음 편안하게 아내가 해 주는 식사를 맛있게 들고 뒤뜰에서 따온 주홍빛 단감을 깎아 먹으며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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