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자수고(字數考)

2013.05.06 10:09

동아줄 조회 수:304 추천:32

시조 자수고(字數考) / 정완영

앞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조는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서 우리 민족의 모든 내재율이 담겨진 그릇이다. 혹자는 지금같이 문물과 사고가 복잡다단하고 자유분방한 현대에 있어서 정형 속에 인간의 사유를 끌어담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우리가 반만년이란 역사를 살아오면서 깎고, 갈고, 다듬고, 간추려온 틀인 까닭에 사람이 길을 걷다가 마침내는 절로 발걸음이 제 집으로 옮겨지듯이, 우리 모두의 귀결점인 시조로 들어가기란 결코 부자유스럽거나 어렵거나 한 일이 아니다.

그나 그뿐인가. 우리 시조는 한시나 일본의 단가 배구(俳句)처럼 그 자수에 요지변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축성이 있고 자유자재롭다는 것이다. 다음에 그 예증을 들어보기로 한다.
시조의 기본율은,

3 4 3 4 (초장)
7 7


3 4 3 4 (중장)
7 7

3 5 4 3 (종장)이다.

成佛寺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3 4 3 4)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3 4 4 4)

저 손아 마자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3 5 4 3)

노산 이은상 선생의 <성불사의 밤>이 그 기본율에 맞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기본율에서 벗어나 더 휘청거리는 멋이 있는 작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수고(字數考) 2


태양이 그대로라면
8

지구는 어떤 건가
7

수소탄 원자탄은
7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9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3 5 4 4

가람 이병기 선생의 <냉이꽃>의 셋째 수다.



이렇게 시조란 틀에 박힌 듯하면서도 박히질 않고, 또 자유분방하면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정형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우이든 내재율만 잃지 않는 범위안에서 어느만큼 자수의 가감은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파격(자수가 많으면)을 하면 쥐잡기 위해 독을 깨는 우(遇)을 범하는 일이 되는 것이니 삼가야 할 일이라 믿는다. 마치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준법(遵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가 허락되듯이 말이다.

그러면 시조에 있어서 허락될 수 있는 자수의 테두리는 얼마만큼의 것인가? 한번 알아보기로 하자.


자수고(字數考) 3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4 (9자까지 가능)
3 (부동) 5 (7자까지 가능) 4 (5자까지 가능) 3 (4자까지 가능)

이것을 풀이한다면 초 · 중 · 중장의 전후 귀가 3, 4자로 합하면 7자인데, 9자까지가 가능하고 (예컨대 3, 4도 좋고 3, 5도 좋고 3, 6도 좋고, 2, 7이나 4, 5도 좋고), 종장 3, 5, 4, 3의 첫 3자는 부동이나 5자는 7자까지, 4자는 5자까지, 3자는 4자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에 작품의 예를 들어 보겠다.

아무리 여름이 더워도 싫단 말 다신 않을래
(3 6 3 5)

이 밤도 또 밤새워 우는 저 가을 벌레들 소리
(3 6 3 5)

더구나 우수수 잎들이 지면 어이 견딜 까본가.
(3 8 4 3)


이호우 선생의 <聽秋(청추)>라는 작품의 첫 수다.
얼마나 자수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내재율을 잘 살려 낸 작품인가.
그러면서도 파격이 전혀 없는 천의무봉한 가락인가.

이상 드러난 작품들만 보더라도 우리 시조가 얼마나 리드미컬하고 멋이 있으며, 부자유한 듯하나 기실은 자유롭고, 또 분방한 듯하나 아주 잘 정제된 우리 가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출처/시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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