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2007.10.12 10:46

이용애 조회 수:232 추천:66

    눈길

                        이 용 애

성긴 눈발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깨끗이 다듬어진 길 앞에 서서
기억 속으로 날아드는 눈송이 따라
내 눈길은
그 날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가라앉은 진회색빛 하늘에선 함박눈이
풀풀 날리기 시작하던 아침이었다
눈송이에 정신을 빼앗겨
겁도 없이 들어선 야산 오솔길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삽시간에 사각사각 덮인 눈 밑에
어린 떡갈나무 개암나무 사이로
빤히 보이던 오솔길
자취 없이 사라지고
나는 그만 방향을 잃고 동그마니
나무가 되어 서 있었다

이젠 그 자리에
눈에 묻혀도 길 잃지 않을  
반듯한 아스팔트 길 하나
끝도 없이 뻗어 있다

정신없이 갈팡질팡 헤맬 때
내 손 잡아주던
어린 나무들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넓혀진 길, 조금도 반갑지 않고
그 때 그 눈송이 함빡 맞으며
눈 덮인 오솔길로 뛰어 들고 싶다

가슴 가득한 서러움이 풀릴 때까지
눈 속에서 다시 길 잃고
헤매고 싶다
떡갈나무 개암나무 사이
눈송이 사이로 헤매고 싶다

-- < 한글문학 >  98 겨울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 환호하는 샌 듄스(Sand Dunes) 이용애 2007.10.12 202
80 경계선 이용애 2013.03.26 219
79 황홀한 산길 이용애 2007.10.12 224
78 작은점 하나로 이용애 2007.10.12 231
» 눈길 이용애 2007.10.12 232
76 황야에서 들리는 소리 이용애 2007.10.12 234
75 아가야 이용애 2007.10.12 239
74 내 꺼 줄께 이용애 2013.03.26 240
73 발자국 이용애 2007.10.18 242
72 낙엽으로 떨어지는 날 이용애 2007.10.12 244
71 한 그루 나무로 이용애 2007.10.12 246
70 성묘 길 이용애 2007.10.12 252
69 가을산을 오르며 이용애 2007.10.12 253
68 THE LITTLE JOSHUA TREE 이용애 2007.11.13 256
67 비개인 산 길에서 이용애 2007.10.12 261
66 태평양 한 쪽 끝에 서서 이용애 2007.10.22 261
65 하얗게 달려오는 벌디산 이용애 2007.10.18 264
64 LA의 새벽 하늘 이용애 2007.10.19 272
63 이슬이여 이용애 2007.10.30 274
62 LA로 이사 온 설산(雪山) 이용애 2007.12.13 281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7,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