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바라보며

2007.10.16 10:02

이용애 조회 수:566 추천:73

                       산을 바라보며
                                              이 용 애
                                                          
    한동안 겨울비가 내리고 예년 보다 쌀쌀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멀리 보이는 LA 북동쪽 높은 산에 눈이 제법 많이 덮여 예년보다 더 멋있는 겨울 산의 모습으로 다가 왔다.
    LA의 북동쪽을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윌슨 산과 샌 가브리엘 산이 연이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중에서 605번 후리웨이가 끝나면서 210번 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정면으로  가까이 마주 보이는 산이 샌 가브리엘 산이다. 그 뒤로는 아주 멀리까지 높은 산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어 해마다 겨울이면 그들 산 위에는 눈이 덮여 계절 감각에 둔한 우리에게 겨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아침이면 605번 후리웨이를 타고 북상해서 출근하는 나는 날마다 산을 가까이 볼 수 있는 행운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비지네스를  인수해서 처음 출근할 때 이제까지는 늘 도심 속의 건물 숲만 보면서 차를 몰아야 했던 나로서는 아침마다 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상쾌한 기분을 일게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겨울이었는데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아서인지 눈은 정상 부근에만 조금 덮여 있었다.
    이곳 LA는 사 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사막 기후이고 보니 한국에서처럼 봄이 되면 산의 나무가 새 잎이 살아나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고 가을이 되어도 색깔이 고운 단풍 구경을 할 수는 없지만 산은 그 나름대로 가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 나를 즐겁게  한다. 특히 앞에 보이는 샌 가브리엘 산에는 변변히 큰 나무도 없이 잡초나 난쟁이 관목이 고작이다. 아람들이 나무가 들어서고 신비한 모양의 바위가 들어찬 경치 좋은 산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민둥산에 불과하다. 그래도 멀리서 바라보이는 산은 역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주고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걸작품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계절을 통해 많은 날들을 이른 아침이면 안개구름을 만나게 된다. 구름이 중턱까지 깔려 있고 엷은 구름으로 덮여서 잘 보이지 않는 산의 위 부분을 신비스럽게 조금씩 내 비쳐 보여주는 가하면 어느새 산 전체를 들어내 보인다. 그럴 때면 나는 서서히 옆으로 유영하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가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에라도 찾아 들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쩌다 한 낮에 605번 길을 북상 할 때면 군데군데 몰려 있는 구름 위로 햇빛이 비쳐 앞에 놓인 산 전체에 구름 그림자로 명암이 뚜렷한 수채화를 그려 놓는다. 그래서 얼핏 보면세계지도를 색깔을 살려서 그려 놓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 화가가 초록색과 검은 색 물감으로만 명암을 살려 그림을 그린 것 같이도 보인다. 날씨가 아주 맑게 개인 날 구름 한점 없는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산은 제각기 다른 모양의 봉우리를 자랑하듯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고 멋이 있다.
    때로는 하늘에 하얀 솜털 구름이 가득 피어올라 멀리 뒤편 높은 산들의  아름다운 봉우리와 숨바꼭질을 한다. 그럴 때면 구름 사이사이로 보이는 맑고 파란 하늘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가슴이 저려 오는 것 같다. 이런 하늘을 대할 때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보았던 티없이 맑고 아름다운 여름 하늘을 생각하며 옛날을 그리워하게 된다.
    여름철 공해가 심한 날이면 온통 앞을 덮어 버린 스모그 때문에 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시커먼 벽이 죽 늘어선 것 같아 답답하고 그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기분을 언짢게 만든다. 또한 이런 공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걱정스러워진다. 그러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온 후의 산은 스모그를 벗어버린 깨끗한 모습이어서 산 본래의 모습을 세세히 들어내어 보여주어 그런 염려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기세를 꺾인 시간인 퇴근 할 때면 210번 길을 서쪽으로 달려 605번 길로 접어들기 전에 산의 또 다른 신비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낮 시간이 길어 해가 윌슨 산의 서쪽 끝자락 뒤로 넘어 갈 때면 서쪽 하늘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고 석양을 등지고 있는 산의 모습은 역광을 받아 보랏빛 곡선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럴 때면 마치 잿빛의 거대한 짐승이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여 저녁노을의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덧 보이게 한다.  
    겨울철 우기로 접어들어 LA 하늘은 전체가 흐리고 컴컴할 뿐인데 산자락에는 동떨어지게 변화가 많이 일어난다. 검은 구름이 두텁게 몰리면서 군데군데 소나기를 뿌리기도 하고 잠시 후면 그 구름이 계곡을 따라 이동하다가 두텁게 가렸던 산자락을 엷은 안개로 감싸면서 신비한 그림을 만들어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멀쩡하게 개어 있던 골짜기를 완전히 덮어 시꺼멓게 만들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의 신비함에 매료되곤 한다
    앞에 놓인 얕은 산에는 오랜만에 비를 만난 잡초들이 연초록 색으로 살아나 마치 봄을 맞은 듯 산 전체가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 반면 먼 뒤쪽의 높은 산들은 의연하게 겨울을 맞은 자세로 탈바꿈을 해서 흰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맞는다.
    오늘은 오후에 외출했다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 할 무렵 605번 후리웨이로 돌아오면서 내 눈을 의심할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둠이 거의 산자락을 덮어 앞쪽의 낮은 산과 뒤쪽의 높은 산이 모두 으스름한 검은빛으로 변해 산과 하늘이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멀리 흰눈에 덮인 산 정상들만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이지 않는가! 아 저 모습! 어떻게 저렇게 보일 수 가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알프스 산 근처에라도 와 있는 듯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마치 신화 속의 설 산을 보는 듯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을 혼자서만 보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나 또한  저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 둔 채 후리웨이에서 내려 방향을 바꾸고 나면 그 신비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을 생각하니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그 귀한 흰 봉우리를 길이 담아 두리라.    
    나는 이 신비한 자연의 모습을 내 생활 속에 담아 보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한 채 멀리 허공에 떠 있는 어둠 속의 하얀 봉우리들을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바라 보았다


                              -- < 글마루 >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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