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봉산 기슭

2008.01.14 11:08

이용애 조회 수:685 추천:63

  
                      배봉산 기슭
                                                                                                               이 용 애

   며칠 전 ‘조선작’씨의 단편소설 ‘고압선’을 읽는 중에 ‘배봉산’이 등장했다. 이야기의 정황으로 보아, 그 산은 내가 어릴 적에 오르내리며 뒹굴던 바로 그 배봉산 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어느새 읽던 소설 속에서 나와 내 추억 속의 배봉산 기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초등 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하게됐다. 한편으론 촌내기로서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생전 보지 못한 서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도착한 서울에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온 것 같았다. 말로 듣던 서울이 아니었다. 선로 위를 달리는 전차도 없었고,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이나 거리를 메우는 인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이사 온 곳은 아버지가 새로 근무하시게 된, 배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서울 농업고등학교 사택이었기 때문이다.
   멀리 붉은 벽돌로 된 교사(校舍)가 우거진 나무숲에 가려 지붕만 조금 보였다. 정원수 사이로 여기저기 넓직히 자리잡은 일본식 건축양식의 사택이 여나무 채 이채로웠다. 처음엔 기대가 무너져 실망이 컸다. 그러나 산비탈을 온통 차지한 과수원, 실버들이 비단실 같이 늘어져 물위를 찰랑대는 연못들은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시골에서 보아 온 누런 소와는 다른 얼룩무늬 젖소, 몸 전체가 분홍색인 요크셔 돼지 등, 낯선 여러 종류의 가축들, 처음 보는 서양 꽃들로 가득한 화원과 온실, 그리고 단아한 앞산과 넓은 들, 이모든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나는 곧 빠져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때는 마침 이른봄이라, 동쪽에 양팔을 벌리고 농장을 감싸고 앉아있는 배봉산엔 나뭇잎이 파릇파릇 생기를 뿜고, 교문에서 사택까지의 길 중간엔 노란 개나리가 모여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택 단지 안에는 벚꽃도 한창이라 연분홍색 꽃 터널 밑을 지날 적마다 소풍이라도 나온 기분이 들었다. 벚꽃이 진 후엔 라일락꽃이 연보라색 꽃구름을 펼쳤고 향기도 은은하고 좋았다. 우리 집에서 빤히 보이는 과수원엔 복숭아, 앵두, 자두, 배, 포도, 밤꽃들이 차례로 피고  과수원 울타리의 철책위로는 넝쿨 장미가 기어올라 서로 다투어 펴, 아름다운 장미로 과수원을 둘러쌌다. 주말 아침이면 나는 울타리를 따라 이슬에 발목 적시며 걷기를 좋아했다.
   축산 부에선 직원 가족들에게 우유를 유상으로 나누어주었다. 우유를 받아오는 일은 내 몫이라, 꺼멓게 잠든 배봉산 위로 아침해가 솟아오를 무렵이면 어머니는 나를 깨우셨다. 배봉산 정상에 올라, 온 농장이 떠나가게 터뜨리는 성악 지망생들의 발성 연습소리는 내 들깬 잠을 깨워줬다. 내가 좀 이른 날은, 축사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바닥을 말끔히 치우고 젖소들의 가슴을 깨끗이 씻기고 나서 우유 통에 양손으로 쭉쭉 젖을 짜는 작업과정을 흥미 있게 지켜보곤 했다.
   겨우내 죽은 듯이 늘어졌던 연못가의 실버들 가지가, 보일 듯 말 듯 파르스름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농장 곳곳에서 봄이 다시 살아난다. 날마다 등 하교 길에, 버들가지와 농장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봄부터 배봉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가 농장 안으로 메아리쳐, 내가 뻐꾸기 둥지에서 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내가 살던 시골에서 봄부터 여름내 동네 뒷산에서 산울림을 울리며 울던 바로 그 소리였다. 운이 좋은 봄엔 집 뒤 참나무에, 화사한 색깔의 꾀꼴 새가 찾아와 고운 노래로 나를 현혹시켰다.
   오월이면 우리 집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학교 농장엔, 이제 막 이삭이 패기 시작한  연녹색 보리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나는 넋을 잃고 그 연두빛 물결을 바라보며, 가슴이 보리 이삭같이 파릇하게 자라갔다. 늦은 봄 또래들과 어울려 산딸기를 따러, 입산 금지된 배봉산 속을 더듬고 다니다가 산지기 아저씨에게 혼도 나고, 오디를 따먹느라 온 뽕밭을 훑고 다니는 재미도 꽤 좋았다.
   여름 장마철  논에 물이 가득한 저녁, 개구리가 맹꽁이 소리를 베이스로 깔고, 농장 안이 떠나가게 운다. 그 무렵 아침이면 물을 퉁기는 듯한 뜸부기 소리가 ‘뜸 뜸’하고 논두렁 쪽에서 들려 온다. 뜸부기를 보려고 살금살금 접근할 때마다 소리가 멈춰 뜸부기를 보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비가 농장 안의 모든 풀과 나무 그리고 건물까지 자욱하게 덮은 속을 혼자 우산을 받고 걸을 때, 온 천지에  홀로 남은 것 같은 호젓함과 아늑함으로 내 가슴은 잔잔히 물결쳤다.
   가을엔, 곱게 단풍든 배봉산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가을이 깊어 가면서,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은 모습을 보며, 싱싱한 잎이 영원하지 않음에 어린 가슴을 앓았다. 그러다가 그 위에 눈이 하얗게 덮이면 어쩐지 푸근하고 마음이 놓였다. 들과 산, 과수원 그리고 화원까지도 똑같이 휜 눈을 덮어 써 평화로워 보였다. 그것은 또 다른 자연의 신비로움이었다. 눈 속에 엎드린 농장을 볼 때면 나는 형용키 어려운 충만 감을 맛보곤 했다. 나는 그 곳  아름다운 농장에서, 몸과 마음을 자연에 부딪치며 사춘기 꿈을 키웠다.
   그러나 그 곳의 즐거운 추억 속에는 이웃에 살던 내 동갑내기 친구 혜주(가명)에 대한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기억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친구가 이사를 왔다. 혜주는 얼굴이 해사하고 마음씨가 고왔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교엘 다니지 않았다. 다른데서 학교에 다니다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와 겨울에도 이름 모를 갖가지 예쁜 꽃이 가득 핀 온실에 구경가기를 좋아했다. 이중 유리로 지은 꽤 넓은 온실은 석탄 난로를 피워 따뜻했고, 촉촉한 습기 속에 퍼져있는 신선하고 향긋한 꽃향기로 정말 딴 세상 같았다. 온실엔 아무리 오래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가엾게도 혜주는 간질을 앓고 있었다. 어느 가을 저녁 또래 서너 명이 모여서 노는 자리에서 혜주가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다. 우리 모두는 너무 놀랐고, 혜주는 정신이 든 후 오랫동안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착한 혜주에게 그런 몹쓸 병이 있었다니..... 나는 혜주가 불쌍해서 더 가까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혜주는 내가 찾아가도 피하고 그 후론 우리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나도 차차 혜주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 해 봄, 그 친구네 는 이사를 가 버렸다. 혜주가 떠난 후 나는 온실 옆을 지날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나서 보고싶고 소식이 궁금했다. 또 그 친구가 떠날 때 가는 곳을 알아두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혜주가 어디선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있기를 빈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배봉산 기슭에서의 우리 어린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싶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새롭고 그리운 배봉산 기슭이다.
  
                 --< 글마루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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