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꽃

2004.11.08 11:17

나마스테 조회 수:191 추천:20

한국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올가을 한국 단풍은 유난히 아름답게 물들었기도 하거니와 그 현란하고도 쓸쓸한 풍경이 오래도 간다.
단풍이 아름다운 건, 햇빛과 온도와 바람과 시간이 만든 것이라 그렇다.
모두 무위 자연이라는 소재가 저 스스로 어울려 진 것이라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에 가까운 눈으로 단풍을 감상해야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건 아닌지.

어제는 모처럼 해넘이가 시작 된 양평 한강 가를 거닐었다.
무수히 피어 오른 갈대의 하얀 보푸라기 사이로 늙은 한강은 숨죽여 흐르고 있었다.
같이 걷던 네팔에서 온 도반 고철이 그예 한마디 한다.
"너무 바빠. 한국은. 너무 빨라. 차들도 사람들도... 심지어 술 마시는 속도도."

진양조로 느리게 흐르는 한강을 보며 그렇게 시간도 흐르는 네팔이 생각 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런 바쁜 흐름 속에 있었다.
매년 놓치지 않고 관조했던 신불산 억새 바다를. 정갈헌 암자 뒤란에서 구어 먹던 송이 버섯의 맛도 올 해는 못 보았다.
죽자 사자 뛰다가, 그렇게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따라 뛰다가 문득 "그런데 왜 뛰고 있는 거지?"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뛸 수밖에 없는 이중구조,
마음 졸아면서 올 해는 그렇게 뛰었고 그렇게 시간이 없었다.

여기는 다시 인천공항.
비행 시간을 기다리며 창밖의 가을 하늘을 새삼 올려다 본다.
바다 건너 미국 산에도 가을이 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공연히 억울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뛰던 걷든 나르던 이 가을은 제 길을 간다.
길 섶에 핀 구철초 꽃 잎에 코를 대보지도 못한 바쁘다는 행위의 부질없음이여.
가을 하늘로 높이 날면 단풍꽃 바다가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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