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운수 사업

2006.12.07 15:10

나마스테 조회 수:466 추천:19

뭐- 자랑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게 3살때엿던가, 그래요.
척 기작지는 꿈에도 그린던 로마! 거기서 바로 뉴욕으로 날랐으니, 이게 다 항공 운수사업을 하시던 아버님 덕분입니다.

우짜다 지인 편에 미주 소협 모임이 용궁에서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문인협회 뤱에 주소를 갖지 않은 서러움을 느끼는 순간이었지요.
만약 내 서재가 개설 되었다면 그 사발통문은 거기에도 있을 겁니다.

용궁에서 만나기로 했담서요? 거기서 자장면 곱배기는 시키면 안 됩니다. 그 무지막지한 양은 물론이거니와 그릇은 또 어떻습니까. 진실로 일러 말하건데 세수대야 만 했습니다. 그걸 싹- 먹어치운 울트라마징가무쇠위장을 본 후에 아예 그걸 끊었습니다.

항공운수업을 하시던 아버님의 유전자를 받은 이상, 자장면 안 먹인다는 조건으로 참석하려 합니다.
3살부터 비행기 타는데 이골이 난 본인이 어찌 지엄한 회장님의 호출을 잊겠습니까.
그리고 보고지고 오매불망 그리운 문우들 얼골 박치기 한다는데 우찌 빠지겠습니까.

우리 선친께서 운영하던 항공 운수업은 좀 작은 규모였습니다. 비행기중 화물기는 한 대도 없고 전부 여객기였으며 그것도 대한 항공처럼 많은 것도 아니라 몇 대 뿐이었지요.
혹 회장님도 우리 항공기를 타신 적이 있는지 모르겟습니다.
활주로까지 달린 이동식 움직이는 공항.

니어커에 철판으로 만든 비행기가 아버님 손에 빙글빙글 돌아 갔지요. 동체에는 '로마 '파리'등이 써 있었습니다. 그러니 금방 뉴욕도 간게지요. 회장님도 한 번 태워 드릴까 생각해 보지만 경쟁에 밀려 전설 속의 항공사가 되었습니다 그려~

이제 그걸 수리하여 모임에 타고 갈 예정으로 있다는 겁니다.
전 처럼 자장 곱배기는 회장님만 드실 줄 믿사오며, 그럼 만나 뵈울 때까지 내내 강건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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