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2009.11.18 00:46
풍경소리 / 정목일
고성 옥천사에 와서 풍경소리를 듣는다.
흐르는 바람 속에 뿌려지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름 같은 것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풍경은 사찰의 귀걸이-.
마음의 귀가 하도 밝아 하늘의 소리 다 듣고서 '그래 알았다' 대답하는 소리 ---.
'댕그랑-- 댕그랑--'
오랜 명상으로 길들여진 여유 속에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낭랑히 울리고 있다.
몇 백 년 묵은 고요의 한 끝에 달려 있다가 내는 소리 일 듯싶다.
유현(幽顯)한 그 음향 자체만의 소리가 아니다.
풍경과 산의 명상이 만나서, 풍경과 바람이 만나서 내는 소리 ---
이럴 때 대웅전의 부처는 한 번씩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에도 기와지붕 외곽에 달려있는 풍경만은 잠을 깨어 홀로 '댕그랑--댕그랑 -- ' 소리 파문을 던지고 있다.
부드러운 바람이 풍경의 붕어를 살랑살랑 흔들어 본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평온해 진다.
달빛 속으로 풍경소리가 닿을 때 `````` 풀벌레 소리와 풍경 소리가 만날 때 ``````'
내 마음속에도 '댕그랑---댕그랑--' 소리가 난다.
그냥 움트는 연초록 산색(山色)속으로 풍경소리가 흘러갈 때 `````` 추녀 외곽으로 떠 흘러가는 구름을 배웅할 때 `````` 진초록 속으로 풍경소리가 젖어갈 때 `````` 단풍빛깔의 산색 속에 풍경 소리가 불탈 때 `````` 그때마다 내는 음색은 저들 마음편이다.
들릴 듯 말 듯 찰나를 흔들지만 영원의 소리이다.
기와지붕 단청(丹靑)의 연꽃 향기를 깨워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하늘도 더 깊어지고 향기로워지는 것 같다.
산도 눈감고 절도 눈감은 밤에도 홀로 깨어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고요의 한 음절일까.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부처의 깨달음 한 음절을 무심코 들려준다. 수만 광년을 지나 내려온 별빛이 풍경 안 붕어비늘을 비출 적에 어찌 소리 한 번 내지 않을 수 있을까.
'댕그랑--댕그랑---'
아무도 모르게 빛과 소리가 만나고 있다.
'댕그랑--댕그랑---'
매달려 있지만 세월의 강물을 타고 영원 속으로 붕어가 헤엄치고 있다.
그리운 이여, 우리의 인생도 저 풍경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흐르고 있는가.
그리움도 매양 풍경소리로 울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 점 바람, 흘러가는 구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물결로 흐른다.
풍경소리를 들으면 온유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삶의 풍파에 팔랑개비처럼 바삐 돌기만 했을 뿐, 풍경처럼 낭랑한 소리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듣고 보니 소리의 자비였구나. 하늘에 올리는 소리의 공양이었구나.
'걱정 말아라' 달래주는 위로의 속삭임이었구나.
무심(無心) 중에도 무심 같은 한 점의 바람인줄 알았더니,
용서와 관용의 미소, 깨달음의 득음(得音)이었다.
'댕그랑--댕그랑--'
우리 인생도 꽃향기와 같은 의미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도 풍경처럼 한번쯤 하늘을 향해 '댕그랑--댕그랑--' 울어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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