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낭거미
2007.05.25 08:51
염낭거미
양 미 경
하늘을 보던 내 눈은 허공의 한 점에서 머물고 말았다. 태양에 반짝 반사되어 천천히 바람을 타고 날고 있는 그것이 내 시선 위를 스쳐갈 때 비로소 거미라는 것을 알았다. 순간 거미는 징그럽다는 고정관념은 사라지고 참 아름답고 자유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미는 은빛 실을 길게 뿜은 뒤 바람을 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바람에 저렇듯 훌훌 날아가는 거미의 삶, 그 뒤에 숨은 이야기는 가슴 저리기까지 하다.
거미는 모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염낭거미 암컷은 번식기가 되면 나뭇잎을 말아 작은 주머니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천적으로부터 존속 보호를 위하여 외부와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알을 낳는 것이다. 어미거미는 애거미가 부화하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그 희생적 사랑은 어미만이 베풀 수 있는 위대함이다. 어미의 몸을 먹고 독립할 정도로 자란 애거미들은 둥지를 뚫고 나와 바람 따라 제 길 찾아 흩어져 간다.
생각해보면 인간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요즘 시골에 가 보면 눈에 뜨이는 사람은 노인네들이 대부분이다. 대청마루에 멀거니 앉아 앙상한 몸으로 담 너머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모습은 무표정에 가깝다. 도시로 유학 간 자식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새벽 일찍 일어나 쇠죽 쑤고 논밭에 나가 뙤약볕에 허리가 휘어지도록 이 평생을 살았건만 남은 것은 가랑잎처럼 마른 육신뿐이다.
도시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잘 될 수만 있다면 부모는 무엇이든 마다않는다. 살만한 집은 학교로 학원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아이들 태워 나르고, 형편이 어려운 집은 자식들 학원비 마련하느라 파출부로 청소부로 부업 전선에 날밤을 새우는 것이 이 시대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염낭거미는 우리 어머니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끝을 알 수 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감싸 안고, 설사 섭섭한 마음이 있더라도 탓하지 않는다. 그리곤 마지막에는 그들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치환하며 조용히 사라져 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끔찍이도 염낭거미를 닮았다.
눈앞을 스쳐간 그 거미도,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계절이 바뀌면 짝을 만나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하면 제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제 몸을 애거미에게 주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오늘 내가 본 반사광은 염낭거미의 영혼이었을까? 아니면 한줌의 미련 없이 당신의 육신을 주고, 애증도 욕망도 버리고 피안(彼岸)의 저편으로 간 내 어머니의 영혼이었을까?
오늘따라 어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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