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 해

2007.12.23 12:29

김용자 조회 수:790 추천:50

몇 해 전 초겨울, 친구와 함께 집안 오라버니가 운영하는 안동 지례 예술인 마을에 가서 며칠을 지냈다. 수려한 주변 경관도 인상 깊었지만 오라버니의 시(詩)에 매료되어 친구와 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제나 이제나 시를 읽기엔 내 무딘 감성이 따라주지 않지만, 벽에 걸린 액자 속의 빛바랜 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공부하느라 떠돌며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그가 첩첩산중 독가촌(獨家村)에서 적막한 생활을 견디기는 실로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영문학을 한 사람이 아닌가. 임하댐을 만들면서 낙동강 주변의 수백 년 넘는 집성촌이 모두 수몰 위기에 처하자 종손인 오라버니는 종가의 관리 아래 있던 정자와 부속 건물들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는 엄청난 작업을 묵묵히 해내었다. 십 년이 넘는 대역사를 마무리 하면서 그 동안에 지은 시를 편편이 모아 시집을 만들었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시를 짓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는 종손, 맞지 않는가.

오라버니의 시는 어두웠던 내 시 세계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주었다. 산중에서 그 첫날 밤, 오라버니는 우리를 쉽게 놓아주질 않았다. 두 여인을 앞에 두고 계속 술잔을 비우며 쏟아내는 시와 시론. 시를 이해시키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게 시간을 보내던 오라버니. 갑자기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난 그때 오라버니의 고독을 얼핏 보고 말았다.

다음 날 나는 고독이 켜켜이 내려앉은 오라버니를 또 한 번 보았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싸리 빗자루로 쓱쓱 마당 쓰는 소리를 들으며 오라버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미처 깨지 않은 간밤의 취기와 깊은 외로움을 그렇게 다스리고 있었다. 마당 쓰는 소리에 살며시 문을 열자 대지를 뒤덮은 하얀 서리꽃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차고 정결하고 어여쁜 서리꽃에 눈이 부셨다.

“저 아래 강가에 나가 봐. 서리꽃이 이 정도니 물안개가 볼 만 할 거야.” 시에 취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여행이었다. 그 추억 속에 밤을 같이 보낸 친구는 나를 잊었을까. 인연이 다한 것일까. 뜻하지 않게 깊은 상처를 주고 지금은 남이 되어 꿈속에서나 가끔 볼까. 그리움만 서리서리 쌓여갈 뿐이다. 일 없이도 매일 드나들던 친구의 이층 집. 요즘도 나는 그 집 앞을 버릇처럼 서성인다. 그이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마음만 먹고 손을 벌리면 금방이라도 와락 안겨올 것만 같은 그. 멀거니 그 집 창문을 올려보다가 돌아올 때의 내 마음은 말 그대로 형벌이다. 불 꺼진 창도, 불 켜진 창도 내겐 쓰라림이다. 그 친구는 나를 잊어버렸을까. 아니면 나와 같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친구와 함께 묵었던 한 평 남짓한 방. 작은 봉창을 열면 앞산이 첩첩이 겹쳐지고 그 아름다운 능선이 선계를 방불케 했다. 물안개 자욱한 강의 물줄기와 탁 트인 앞산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 봉창을 통해서 가슴 가득 안겨오던 것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때 감동으로 다가왔던 시가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 해’이다.

미닫이에 푸른 달빛/ 날 놀라게 해// 일어나 빈 방에/ 좌불(坐佛)처럼 앉다.//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

버레소리 잦아지는
물안개 밤길

달 아래 그대 문앞
다다름이여

울 넘어 꽃내음만
한참 맡다가

달 흐르는 여울길
돌아오나니/

내 아직 적막,
길들지 못해 .

김원길 시 -내 아직 적막에 길들지 못해- 전문

낮에는 인부들과 정신없이 가역(家役)에 휘돌아 치다 밤이 되면 온 몸은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더 또렷해지는 정신세계. 교교한 달빛과 별빛이 섬세한 시인의 심성에 깊은 아픔을 주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문득 떠오르는 그리움. 달빛을 밟고 기어이 가보고 싶은 심정.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야 하는 그 아픔. 세상 모두가 적막인 것을. 적막강산이 거기에만 있었겠는가. 산천초목도 적막이요 가슴속은 더한 적막이 있었을 것 아닌가.

나 이제 그 적막을 알 것 같다. 깊은 산골에서 어쩌다 한 번씩 하늘을 향해 퀑! 하고 외마디 개 짖는 소리. 그 소리가 고요히 가라앉은 공기를 가끔 휘저어 놓는다. 기다려도 해 저물도록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우편배달부도 오지 않는 그 적막을. 세상과 단절되어 자신의 존재가 점차 잊히는 그 두려움을 나는 알 것만 같다. 인간을 피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산 속에 은둔한다면 그 절대 고독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있어도 나를 찾는 전화 한 통 없는 외딴 섬을 나는 몇 년 전부터 경험하고 있다. 이게 적막이지 싶다. 어느 때는 혹시 전화가 고장인가하고 확인해 보면 ‘뚜우’ 하는 발신음이 귀를 아프게 한다. 순간 밉살스런 전화통을 부숴버리고 싶을 만큼 적의를 느낀 적도 있다. 애꿎은 화풀이다. 세상은 차츰 나를 잊어가고 있다. 적막에 길들지 못해 시와 수필을 써야하는 오라버니와 나의 존재를 나란히 놓아본다. 오라버니가 문밖까지 갔다가 돌아선 막연한 그리움의 실체와 내 확연한 그리움의 무게.

나는 아직 멀었지 싶다. 하얀 눈이 와도 아프고 나뭇가지에서 떨고 있는 작은 굴뚝새에게도 편하게 마음이 가질 않는다. 겨울이 깊어지자 무심한 바람결에 마른 나뭇잎이 이리저리 쓸린다. 저들도 늦게나마 때가 다한 것을 알았나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바람도 없이 나무에서 잎이 떨어지듯 내 뜻과 상관없이 남남이 되는 너와 나. 나란히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제각각의 길을 가듯 그렇게 남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28개월 된 손자 재형이와 가끔 마을을 한 바퀴씩 걷는다.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나무에 매달렸던 잎이 바람도 없는데 뽀르르 떨어진다. 그 낙엽을 보면서 재형이는 얼굴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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