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뉴스 전문가 인터뷰>(문화부문)



문학의 밭에 수필의 씨앗을 뿌리는 수필농사꾼, 김학(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 이사장)/ 대담 : 브레이크 뉴스 소정현 편집위원


















1. 현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에서 많은 예비문인들에게 수필을 지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보람을 느끼십니까?








*<김학>: 2001년 9월부터 처음으로 수필창작과정을 개설하여 강의를 시작했지요. 20여 명의 수강생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기초반‧중급반‧고급반‧야간반 등 4개 과정에 90여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지금까지 70여 명이 등단하여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2명이 수필집을 발간하였으며, 또 30여 명이 전북일보와 경남신문, 동양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하였을 뿐 아니라, 시흥문학상 ‧ 장애인문학상 등 외부의 다양한 전국규모의 각종 문학작품 현상공모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발군의 실력들을 발휘하여 크게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수료생은 약 4백여 명이 되지만, 그 가운데서 백여 명은 꾸준히 문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 원래 방송인 출신으로 KBS에서 정년퇴직하신 뒤 수필문학의 문하생 양성에 노력하고 계시는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고 숨겨진 이야기도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김학>: 원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는 개원 초부터 문예창작과정이 설치돼 있었어요. 그런데 수강생들이 모자라서 자주 폐강되곤 했었지요. 그러다가 KBS에서 정년을 앞둔 내가 2001년 2학기부터 수필창작과정을 개설하면서 수강생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등교하면 되니까 큰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김재훈 님은 서울에서 전주까지, 현직 초‧중등학교 교사인 홍사화, 이양기 님은 충북 청주에서, 행정공무원 권영이 님은 충북 증평에서, 법조계공무원인 이은재 님은 대전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김병국 님은 전남 장성에서 전주까지 매주 1회씩 등교하면서 수필공부를 했습니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지요.



전라북도의 경우도 고창, 부안, 김제, 정읍, 군산, 익산, 남원, 진안, 장수, 임실 등 거의 모든 지역에서 수강생들이 다니고 있어요. 심지어 장수농협조합장으로 근무하는 고강영, 이정심 부부는 함께 야간반에서 공부하더니 지난해 ‘계간 대한문학’에서 부부가 나란히 등단하여 축하를 받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이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다양한 수필이론과 정보를 제공하여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켜주고,



둘째, 수강생들의 작품을 꼼꼼하게 첨삭하여 E-mail로 전해주어서 수강생 스스로 자신의 취약점을 개선하게 하며,



셋째, 해마다 봄‧가을이면 수강생들의 수필작품을 모아 동인지 ‘행촌수필(杏邨隋筆)’을 출간하고, 인터넷에 행촌수필문학회 서재와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수강생들의 신작수필을 발표케 하여 작품을 비교평가하게 하여, 수강생 서로 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며,



넷째, 수강생들을 조직화하여 선후배의식을 갖도록 하고, 봄‧가을마다 단체로 문학기행을 다녀오며, 연말이면 ‘행촌수필 출판기념회 및 수필의 밤’ 행사를 마련하여 친교와 단합의 기회를 제공하며,



다섯째, 수강생이 등단하면 그 등단문예지를 모든 수강생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어서, 미등단 수강생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등단해야겠다는 분발심을 갖도록 하고, 등단 수강생들에게는 자신의 등단작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수강생들의 나이 분포를 보면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데 그들 모두가 나이를 초월하여 스스럼없는 인간관계로 한 식구 같은 분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3. 김학 선생님은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수필문학의 지형을 넓혀가고 계시는데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분입니다. 또 수필문학을 문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확산시키면서 수필 소재의 영역을 폭넓게 확장시킨 공로가 큰데, 주변의 이런 평가에 대해 김학 선생님께서 다시 한 번 정리해주시겠습니까?








*<김학>: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문학에 종사하시는 선생님을 한 분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문학하시는 선생님들이 희소했기 때문이지요. 혼자서 막연히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서 대학신문에 시와 수필을 발표하면서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지요. 서해방송 PD로 근무하던 1970년대 중반에는 에세이 프로그램인 <밤의 여로>를 맡게 되었어요. 2년 반 동안 날마다 수필 한 편씩을 써서 사이사이에 감미로운 음악 3곡을 섞어서 방송했는데, 라디오 전성기여서 그랬던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그때 나는 수필창작 실습을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날마다 혼자 원고를 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전북도내 문인들 중에서 필진을 선정, 원고를 청탁받아서 방송을 했지요. 나중에 그 필진들이 모여 망년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전북에도 수필문학회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1978년 가을에 마침내 전북수필문학회를 창립했고 동인지 ‘전북수필’을 창간했지요. 그 ‘전북수필’이 벌써 64호 출간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고 정덕룡 선배가 회장으로, 호남대학 정주환 교수가 주간으로 선출되어 열심히 전북수필문학회를 가꿨습니다. 1984년에는 내가 회장을 맡았는데, 양상렬 변호사의 상금지원으로 ‘전북수필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했지요. 그런 뒤 나는 임실문인협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을 맡게 되었고, 2001년에는 전북펜클럽을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전주이강주 조정형 사장의 도움으로 작촌문학상과 전북신인문학상을 만들어 전북 문인들의 창작열을 북돋우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에 당선하여 전북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활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의 활동범위가 지역에서 전국으로 자연스레 넓혀진 것이지요.



수필은 생활문학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글로 써보고 싶은 생각을 갖기 마련이지요. 그런 분들에게 글 쓰는 요령을 일깨워드려서 자신의 인생역정을 한 권의 수필집에 담아내도록 하는 데서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나는 나 자신이 수필 전도사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4.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현재 한국수필문학이 활성화 조짐이 있습니까, 아니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입니까?








*<김학>: 21세기는 수필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수필이 모든 문학 장르를 아우를 것이라고 예견하는 이도 있습니다. 미래문학인 수필은 갈수록 그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어요. 수필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고, 2백여 종의 종합문예지와 시사종합지마다 수필을 게재하고 있으며, 20여 종의 수필전문지가 발행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수필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가입한 문인이 8천여 명인데 그 가운데 시인이 4천여 명이고 수필가들이 그 절반인 2천여 명에 이릅니다. 앞으로도 수필가는 시인 못지않게 자꾸 불어날 전망입니다. 수필은 시나 소설 등 다른 문학 장르까지도 녹여서 수필을 빚어낼 수 있는 용광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필은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장르이기 때문에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수필가와 수필독자가 크게 불어날 것이고 그만큼 수필의 영향력은 더 확대되리라 기대합니다.








5. 일명 신흥종교인 ‘황금교’가 창시되었다고 할 정도로 우리는 물질적 가치관이 모든 것을 제압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병리 현상들이 물밀듯 동시다발적으로 속출하고 있습니다. 정신치유 관점에서 수필문학의 가능성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주시겠습니까?








*<김학>: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돈이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돈은 여자를 남자로 바꿀 수 없을 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누구나 돈을 벌려고 발버둥칩니다. 이 세상에는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있고 못 버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다 보니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욕심 때문에 빚어지는  범죄들이 날마다 신문이나 방송의 w 요 뉴스를 점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비뚤어진 사회현상을 바로 잡으려면 수필이 보다 더 본래의 기능을 잘 발휘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수필은 자신의 마음을 발가벗겨서 독자 앞에 진솔하게 드러내는 심적나상(心的裸像)의 문학이 아닙니까? 사람은 누구나 온갖 스트레스를 가슴속에 쌓아두면 병이 되지만, 그것을 수필로 쏟아내면 가슴앓이가 사라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말이나 글로 표출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나무 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쳤다는 고사는 바로 그런 맥락과 통한다고 보겠습니다.



또 수필은 자기반성의 문학입니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듯 양심 앞에서 자기반성을 하는 일이므로 늘 자기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수가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이웃과의 인간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비의 문학인 수필을 공부하면 조선시대의 선비처럼 맑고 깨끗하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6. 우리 시대의 수필문학은 한국의 상황에서 벗어나 세계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도록 지구촌을 대상으로 소재를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씀드려서 다른 나라의 이야기까지도 소재를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학>: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수필의 소재라고 했습니다. 소 오줌과 말똥까지도 수필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수필의 소재를 찾는데 우리나라와 남의 나라를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수필의 주제를 잘 살릴 수만 있다면 종교, 국가, 인종을 구별할 필요 없이 예화(例話)를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경제력이 나아지면서 누구나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을 많이 합니다. 그런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기행수필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수필가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세계인이 감동할 수 있는 수필을 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최남선, 이광수, 정비석 같은 뛰어난 우리의 문장가들이 요즘 사람들처럼 세계방방곡곡을 누비며 기행수필을 쓸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분들의 활동범위가 고작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만주 정도에 그쳤던 게 한없이 아쉽습니다.








7. (6항과 연관하여) 수필의 소재가 두루 확장되는 것만큼은 고무적인 사실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수필이 너무 미시적인 면 즉, 생활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경수필로 흐르다 보니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효과에서도 매우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공동체적 의식이나 반목과 분열의 해소라든지, 인권의식의 존중, 사회 소외계층의 성찰 등에 대해 문학적 영향력 행사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측면에 잘 부합되는 것은 어쩌면 소설 장르가 더 적합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작품의 길이가 긴 소설에 흥미를 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길이가 짧은 수필이 어필할 수 있어서 수필에 거는 기대가 더욱 크지 않을까요?








*<김학>: 수필 한 편으로 이 지구상의 크고 작은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학으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수필에는 중수필(重隨筆)과 경수필(輕隨筆)이 있습니다. 중수필은 Essay, 경수필은 Miscellany라고도 합니다. 대부분의 수필가들이 즐겨 쓰는 수필은 경수필입니다. 생활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쓰는 수필들이지요. 따라서 이런 수필과 소설의 역할과 기능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권총과 카빈총 그리고 기관총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들 무기의 공통점은 적군을 죽일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이지요. 그러나 그 무기들은 만들 때부터 사용 목적이 다릅니다. 그 무기들은 저마다 사정거리(射程距離)가 다른데, 사정거리가 다르다는 것은 사용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권총에게 카빈이나 기관총의 기능을 요구하고, 카빈이나 기관총에게 권총의 기능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학도 장르별로 그 기능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작가는 소재를 찾으면 자기 전공에 맞는 장르로 그 소재를 작품화하기 마련입니다. 모름지기 시인은 시를, 수필가는 수필을, 소설가는 소설을 쓰려고 할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세분화 되어 갑니다. 의료과목을 예로 들어 볼까요? 옛날에는 내과 외과 등 진료과목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과만 해도 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으로 자꾸 세분화되고 있습니다. 문학 장르도 앞으로 그렇게 세분화 되지 않을까요?



수필은 간편하고 기동력이 뛰어난 문학 장르이기 때문에 활용가치가 크다고 믿습니다. 버스나 트럭에 비해서 승용차가 얼마나 움직이기 편리한가를 생각해 볼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무겁고 골치 아픈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은 현대인들의 사랑을 받기에 좋은 장르입니다.



인터넷시대가 활성화되면서 수필은 그 길이가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활자시대에 원고지 15~20매이던 수필의 길이가 인터넷시대가 되자 5매 정도까지 짧아졌으니 말입니다. 심지어는 소설의 경우까지도 원고지 5매 정도인 미니픽션(Mini-Fiction)이 등장하여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 않습니까? 21세기가 수필의 시대가 되리라는 예견은 결코 억지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 김학 선생님의 수필에선 어려웠던 지난 시설의 회상, 가족의 애틋함, 현재 삶의 긍정 등이 잘 묘사되었습니다. 본인의 수필창작에 있어서 상시 메인 지향점은 무엇인지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김학>: 지금까지 9권의 수필집을 출간했지만 아직 수필이 무엇인지 손에 꼭 잡히지 않습니다. 초점을 잘 맞추지 않고 찍은 사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나는 긍정적이며, 낙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러기에 내 작품에서는 은연 중 그런 정신이 담겨지리라 생각합니다. 또 수필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작가인 나의 일방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내 수필의 흐름도 변해 간다고 믿습니다.








9.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종합문예지가 2백여 종, 수필전문지가 20여 종이나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학>: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문학공화국이라고 할만 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문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며 동인지를 펴내고 있습니다. 내가 IMF때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벌이 무너지고 큰 회사가 부도를 내며 쓰러지는 그 때에도 문예지들이 폐간되기는커녕 오히려 자꾸 창간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문예지 발행인은 대개가 문인들입니다. 그래서 문인들을 기업체의 CEO로 영입했더라면 우리 경제가 훨씬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문예지들이 우후죽순 적으로 불어나면서 해마다 신인들도 대량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어느덧 문인 만 명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곧 2만 명시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옛날엔 발표지면이 아주 모자랐습니다. 그러기에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려면 작품수준이 높아야 하니까 피나는 노력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발표지면이 너무 많다보니 수준이 낮은 작품,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작품도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게 되어 작품에 대한 치열성이 후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경계할 일입니다. 문인이나 문예지 편집자들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문단이 하향평준화하는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모두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일부 문예지 발행인들은 등단한 신인들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고, 대부분의 문예지들은 기성 문인들에게도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아 문인의 지위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문예지 별로 자기 잡지에서 배출한 문인들을 조직화하는 것 역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고 봅니다. 문예지와 문예지 사이에 경쟁의 벽이 자꾸 높아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10. 선생님은 문학적 자녀들과 육체적 자녀들을 두시어 너무 다복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수필애독자들이 김학 선생님의 삶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 넣고 있지 않습니까?








*<김학>: 작가와 독자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는 작가는 수량이 풍부한 물 속에서 사는 물고기처럼 행복할 것입니다. 나는 2남1녀의 자녀들을 육체적인 자녀라 생각하고, 지난해까지 발간한 9권의 수필집에 게재된 수필작품들을 정신적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쓴 수필들은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출한 것들이니만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잘났던 못났던 자녀들이 출생하면 호적과 족보에 올리듯, 내가 쓴 작품들은 수작이건 타작이건 모아서 수필집으로 묶습니다. 그것이 바른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내 육체적인 2남1녀의 자녀들이 나름대로 사회에서 제 몫을 다 하고 있고, 지금까지 내가 낳은 9권의 수필집도 나름대로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내 정신적 자녀로서 제 구실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수필이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필은 아내와는 다른 또 하나의 내 반려자입니다.








11. 이제 조금 서글픈 이야기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이제 인터넷을 활용한다고는 하지만, 중소형 서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음식점과 먹을거리는 연신 호황이지만 문학에 생계를 의존하기는 너무 어려운 시대입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선도적으로 더욱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기업들의 문화예술지원도 더 활성화 되어야 하고요. 또 어릴 적부터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학>: 서점이 줄어드는 건 오래 전부터의 현상입니다. 대학 주변에서도 서점은 자꾸 문을 닫지만 술집은 더 불어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란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텔레비전, 인터넷, 운동, 음악, 연극영화 감상 등 한정된 그 시간을 빼앗아가는 눈요깃거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독서시간을 줄이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책이 안 팔리며, 책이 안 팔리니 서점이 문을 닫기 마련이지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고나 할까요?



정부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어 독서진흥운동을 펼쳐서 책 읽는 국민이 되도록 하면 좋겠지요. 대통령선거 때면 트럭에 돈을 실어다 후보에게 전해주는 기업들은 있지만 문학을 도와주는 메세나는 외면하고 있어요. 정치처럼 반대급부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요원한 문제라고 봅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책과 가까이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아이들에게는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일입니다.








12.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 브레이크뉴스 독자들에게 올해 사업계획이랄까 청사진을 생생하게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김학>: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 문인이 노벨문학상 받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해마다 누가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이 돌아 행여나 하고 기다리면 결과는 다른 나라 작가가 수상자로 밝혀지곤 했습니다. 그 상을 받으려면 아무리 뛰어난 수준의 문학작품이 발표되더라도 노벨상을 시상하는 나라의 언어나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펜클럽은 국제적인 문학조직인 만큼 정부가 이 조직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선별하여 우수한 우리 문학작품을 꾸준히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외 독서시장에 우리의 문학작품을 선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문화관광부 등 관련단체의 예산 뒷받침이 절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예산지원이 변변치 않으니 올해도 계간 펜문학 발간, 반년간 Korea Pen Literature 발간, 펜문학상과 번역문학상 ‧ 앨트웰 펜문학상 시상, 해외동포 창작문학상 시상, 국제펜세계대회 참가, 국제펜 심포지엄, 문학세미나 및 문학강좌 등 연례행사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국제문학교류센터 건립 같은 큰 프로젝트 역시 예산의 벽에 막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13. 마지막으로 브레이크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김학> 내가 브레이크 뉴스에 칼럼을 발표하고 또 내 문하생들이 브레이크 뉴스 토요수필에 수필을 발표하게 되면서 브레이크 뉴스는 우리와 친근한 인터넷 매체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매체입니다. 내 칼럼이나 내 문하생들의 작품이 브레이크 뉴스에 발표될 때마다 그것을 복사하여 <행촌수필문학회> 등 여러 인터넷 문학서재에 퍼다 날라서 브레이크 뉴스를 찾지 못하는 네티즌들로 하여금 브레이크 뉴스에 더 관심을 갖도록 노력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브레이크 뉴스가 네티즌들 사이에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고, 호남본부에서 전북본부가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발과 가슴으로 쓴 전북관련 기사가 브레이크 뉴스를 더욱 영향력이 큰 매체로 만들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브레이크 뉴스는 앞으로 UCC(User Created Contents)를 어떻게 빨리 받아들여 활용할 것인지 미리미리 충분히 대비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는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신문들이 크게 활약했지만 올 대통령선거 때는 브레이크 뉴스가 인터넷 뉴스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대선이 인터넷 선거였다면 올해의 대선은 UCC선거가 되리라고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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