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육아노인

2007.02.18 08:55

임두환 조회 수:79 추천:8

육아노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 임두환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잦아지면서 여권신장이 더욱  강조되는 세태다. 신세대 부부들은 젊어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된다며 맞벌이를 부추기다 보니, 아이 키우는 일은 할아버지할머니 몫이 되었다. 육아노인(育兒老人)이라는 새로운 직종(職種)이 생길 정도이니 예삿일은 아니다. 신세대엄마들은 사회보육시설보다는 시댁부모나 친정부모에게 어린아이를 맡기려는 혈연보육(血緣保育)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 노인네들은 이래저래 걱정이고 한숨이니 딱할 일이다. 손자손녀를 돌보면서 자부심을 갖거나 정서적으로 위안을 받는 노인네도 있겠지만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노인네가 늘고 있어 걱정이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여유로운 노년의 꿈을 잃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러나 신세대 며느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에 큰 감만 놓는다. 불안스런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보다는 애지중지 귀엽게 돌봐주는 할아버지할머니 품이 포근해서일 게다.   어제는 전우회(專友會)모임이 있었다. 회원자격은 전매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사람으로 되어있다. 전주전우회에는 150여 명이 등록되어 있는데, 매월 15일 모임날이면 줄잡아 80여 명이 나온다. 그중 여성 선배도 20여 명이나 된다. 회원의 60%는 연세가 지긋한 7~80대 선배님들이다. 내 나이 올해 회갑인데도 이 모임에서는 막둥이이니, 전우회원 모두가 손자손녀를 거느린 할아버지할머니들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으레 히 건강얘기부터 꺼낸다. 얼마 전까지 잘 나오시던 K선배님이 보이지 않아, P선배님께 근황을 여쭈었더니, 손자를 돌보느라 얼마동안은 못나올 것이라고 했다. P선배님도 손자를 키우다가 ‘골병’들었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P선배님은 2년 전, 시집간 딸이 6개월 된 손자를 맡겼을 땐 몰랐는데, 지금은 손자를 데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힘은 부치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리어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운동삼아 다니던 뒷산도 못가고, 교회일도 그만 뒀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아이를 보러 온 딸이 어미한테 한다는 말이 "TV를 못 보게 해라, 사탕도 주지마라." 잔소리를 늘어놓아 당장 데려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올랐지만, 꾹 참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L선배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외손자를 키우다보니 변화가 생겼는데, 세 살배기 아이가‘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늘 돌봐 줘서 그런지 키우는 쪽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고, 친가(親家) 쪽은 ‘광주할머니광주 할아버지’라 부른다 해서 모두들 웃어댔지만, 사실이 그럴 듯했다. 어머님도 57세에 혼자 되시어 농사를 지으며 7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지금은 육아노인이 되어 셋째동생 성환네 집에서 지내고 계신다. 성환네는 딸을 내리 넷을 두다가 운 좋게도 막둥이 아들, 재보를 낳았다. 지금 같이 저출산으로 고민할 때 같았으면 육아혜택도, 격려의 박수도 많이 받았을 텐데‥‥‥, 아들 하나만은 꼭, 두겠다던 동생이나 제수의 집념도 대단했다. 요즈음 신세대 젊은이라면 언감생심 어림도 없었을 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동생 성환이는 회사에 나가고, 제수는 음식점을 운영하여 어찌할 수 없어 어머님을 모시게 됐다고 했다. 어머님은 몸에 밴 농사를 접으시고, 수원 동생네 집으로 올라가셨다. 손자 재보가 설 쇠면 열 살이고, 봄방학이 끝나면 초등학교 3학년에 오르니 어머님이 수원에 올라 가신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어머님은 손자 재보를 끔찍이도 예뻐하신다. 재보 아니면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지난 추석날이었다. 그날도 여러 손자들 앞에서 유독(惟獨), 우리 재보, 우리 재보하시며 재보를 챙기시니 다른 제수들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장남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어, 어머님에게 조용히 말씀드리기로 작정 하고서는 “어머님! 죄송합니다만, 여러 손자들 앞에서는 절대로 ‘우리 재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했더니, 어머님께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하셨다.  옆에 있던 둘째 제수가 이때라 싶었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아들 재훈이가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어렸을 때였단다. 명절을 쇠고는 집에 돌아왔는데, 뜬금없이   “엄마! 재보네 할머니는 있는데, 우리 할머니는 어디 있어?  나도 할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어찌나 투정을 부리던지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 뒤로,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도 우리할머니가 아니고,‘재보 할머니’라고 우겨대서 난감했었다며 은근히 일침을 놓았다. 핵가족에 물든 요즈음 세태가 왠지 두렵기도 하다. 성환동생 내외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면 저녁 늦게야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니 어머님은 자연스레 식모가 된다고 하셨다. 손녀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는데도 집에 들어와선 아무데나 옷을 훌훌 벗어던져 놓고, 아침저녁 밥상은 물론이고, 밤늦게 간식을 하고서도 내팽겨두고 그냥 학교로 가버리니 속도 많이 상한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며느리한테 일일이 고해바칠 수도 없고 해서, 어머님은 연노한 몸을 이끌고는 설거지하랴, 빨래하랴, 청소하랴 늘 바쁘시단다. 어깨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가슴도 벌렁거리지만 꾹 참고 있다 보니  큰 병이 생길까 걱정이고, 이제와선 후회막심이라고 하셨다. 2003년 미국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아를 맡았던 할머니들은 아이를 돌보지 않았던 할머니보다 심장병 발생률이 55%나 높았다고 했다. 육아에서 받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주원인이 된다며, 스트레스는 혈압을 높이고, 혈관을 손상시켜 심장에 해를 끼친다고 했다. 손자손녀를 돌보느라 병원을 가거나 운동할 시간을 뺏기고, 취미활동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것도 심장건강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육체건강에도 문제가 되지만,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준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의 원인에는 육아부담도 들어있다고 한다. 육아문제를 원만히 해결한 프랑스는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에 허덕이며 심각하게 미래를 고민하는 처지다. 육아문제는 한가정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니 대책을 강구하는데 다 같이 힘써야 될 성싶다.                                     ( 2007.  2.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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