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내 고향 임실

2007.02.24 06:24

이강애 조회 수:124 추천:10

내 고향 임실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초) 이강애 봉황산 아래 배꽃이 활짝 피던 마을. 봉황산 3‧1동산에는 옛날 선조들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있어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본받을 수 있다. 내 고향 임실은 3만 4천여 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임실군청과 경찰서, 우체국이 있으며, 각종 관공서와 초‧중‧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봉황산 밑에 자리 잡은 임실동중학교는 꿈 많던 시절을 보냈던 그리운 곳이다. 그 때 만났던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전주와 남원사이에 끼어있어서 눈부신 발전은 하지 못했어도 주민들이 오밀조밀 정겹게 모여 사는 내 고향 임실. 인심 좋고 산수가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내 고향 임실. 내 고향 임실이 유명해진 것은 임실치즈 때문이다. 그 임실치즈가 유명해서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양반의 고장 임실에서는 일찍이 기차정거장을 임실읍에 세우려 했으나 양반들의 반대로 읍에서 4km나 떨어진 곳에 역을 만들어 비켜가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임실양반들의 고집도 꺾을 자가 없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그래서 전라선 열차를 타고 서울이나 여수로 가려면 새벽부터 역전까지 걸어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선조들은 후손들이 겪어야 할 이 고통을 알고나 계실까. 임실만큼 정겹고 아름다운 곳도 드물레라. 임실 읍내를 가로지르는 냇물은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듯 유유히 흐르고, 송아지가 어미 소를 찾는 음매 소리가 들리는 듯 그립다. 내가 다니던 임실초등하교 운동장엔 미루나무들이 빽빽이 심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세워져 우리 후손들의 배움의 요람이 되고 있다. 매달 1일과 6일에 서는 임실장날이면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요란하고, 소시장에서 팔려가는 소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며, 눈 쌓인 교회 철탑의 십자가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아련하다. 시끌벅적한 시장의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젓가락 장단이 흥겹다. 명절이면 새벽부터 쌀을 이고 방앗간에 모여 차례를 기다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보면서 군침을 삼키던 정겨운 사람끼리 오순도순 살던 곳.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온 동네의 축제날인 양 즐거웠다. 봄가을 소풍 때면 도시락에 계란 부침이 제일 훌륭한 반찬이었다. 가방도 없이 도시락을 책보에 싸서 허리에 동여매고 멀리 걸어갔었다. 멀어도 먼지 모르고, 다리가 아프련만 아픈 줄도 모른 채 재잘거리며 갔던 그 소풍이 그립다. 보물찾기와 수건돌리기 등 흥겨운 소풍. 이제는 모두가 추억으로 남는다. 농한기가 되면 동네 어귀나 장터에서 윷놀이로 시간가는 줄 모르던 내 고향 임실. 인정과 꿈과 추억이 서려있는 내 고향 임실. 그 임실은 조금 지대가 높아 어디서든지 올라와야만 한다. 오수 쪽에서는 모래재, 청웅 쪽에서는 곰티재, 전주 쪽에서는 실티재가 있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임실은 높은 곳이니 높은 사람만 사는 곳인 양 성채처럼 의젓하다. 임실에서 남원 방면으로 조금만 가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의견비가 있는 개오자 나무수자를 쓰는 오수(獒樹)가 있다. 해마다 4월이면 오수의견문화제가 열린다. 백일장이며 개들의 힘을 겨루는 다양한 내용의 축제가 오수 의견공원에서 열린다. 또 10월이면 관촌 사선대에서 소충‧사선문화제가 열린다. 전국 사선녀선발대회, 전국 노래자랑. 고추썰기대회, 농악대회, 시화전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문학을 사랑하는 임실문인협회가 오래 전에 창립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하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문인들이 배출되어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오, 사랑하는 내 고향 임실이여, 영원 하라! 영원히 행복이 넘치는 내 고향 임실이어라!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