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어머니의 눈빛

2007.02.26 08:54

김경희 조회 수:55 추천:9

어머니의 눈빛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간반) 김경희   신호대기 앞에서 가던 길을 멈췄다. 건너편엔 원형의 고층 건물이 휘황한 불빛을 내뿜으며 서 있었다.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은 어찌나 강렬한지, 곧 그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외계인을 떠오르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외계인은 빨간 눈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때 우리는 외계인이 되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많은 사람들이 ‘아폴로눈병’에 걸려 곤욕을 치렀던 시기가 있었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그 눈병에 걸려 정상수업이 힘들었던 때였다. 학교 가기 싫은 엉뚱한 학생들은 스스로 병을 전염시켜 결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눈병은 순식간에 퍼져 온 국민이 비상사태였다. 우리 집에도 이미 두 명의 환자가 발생한 상태였다. 내가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눈병에 걸릴 수 없었다. 며칠 뒤엔 꼭 만나야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레 겁먹은 나는 병에 걸리지도 않았건만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 들러 미리 치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가까운 안과를 찾았다. 평소와 달리 안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엔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맨 뒤에 서게 되었는데, 앞에 있는 한 사람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아뿔싸! 그 눈은 빨간 눈이었다. 뒤에서는 전혀 알 수 없으나 눈동자로 확인하게 되는 외계인의 증표! 흡사 우주선에 들어가기 직전 대기하고 있는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병원에 들어서니 현장은 더욱 치열했다. 겹겹이 줄을 지어 서있는 모습은 시작과 끝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환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의사는 가짜환자를 가려 돌려보냈다. 다행이도 나는 가족의 얘기를 듣더니 받아주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치료해야 될 병은 눈병이었을까? 나에게 치료해야 될 병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눈병이 아니라, 어쩌면 ‘허영심’이었을 것이다. 진정 내가 두려웠던 것은 눈병이 아니라, 눈병으로 잃게 될 미(美)였기 때문이다. 그토록 아끼며 소중히 여기고 있던 눈이었건만, 한 순간에 내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나의 눈을 아낌없이 누군가에게 빼주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아들이었다.   아들의 눈 때문에 한숨으로 보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승부욕이 강한 아들이 친구와 농구를 하다가 그만 한쪽 눈을 다친 것이다. 의사는 ‘한 달’이라는 기간이 아이의 운명을 결정지을 듯 단정을 내렸다.     아픈 아이를 가진 부모는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인지. 행여 불손한 내 마음이 아이에게 미치게 될까 두려워 조심하였다. 행여 자신의 잘못이 아이에게 죄로 미치게 될까 두려워 삼가야 했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 신을 찾게 되는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남편과 나는 금기처럼 입 밖으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실명’이라는 단어를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프니 이 세상엔 아무런 기쁜 일도 없는 것 같았다.   예정대로 한 달이 다 되어 갈 즈음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희망적인 말만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새로운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정말로 시력을 잃게 된다면, 나의 눈을 아들에게 이식해주리라!’ 언젠가는 한판 승부를 걸겠다며 희망에 가득 찬 아이. 그 포부를 펼쳐보기도 전에 실의에 빠져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이미 삶을 살아본 사람이다. 사랑도, 결혼도, 직장생활도 해본 사람이다. 아들에게 내 눈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겐 그 어떠한 일도 아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저 내 머리 속에서는 아이와 함께 수술대에 오르는 모습이 상상될 뿐이었다.   드디어 한 달이라는 기간이 되어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다. 하지만 의사는 확신할 수 없다며 유보기간을 1년으로 늦추었다. 그래도 그 단어를 듣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부모가 된다는 것!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뒤, 나는 부모가 아닌 자식에게 매일 아침마다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었다.   “어때, 오늘은 좀 달라졌니?”   “아~뇨. 똑같아요(뿌옇게 보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콱 막히는지, 내 눈을 주어서라도 하루 빨리 정상인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속이 텅 빈 고목나무가 생각났다. 몸통은 갈라지고 속은 텅 비었으나 중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서있는 고목나무! 그 나무는 필시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부모의 마음인 것 같았다. 아들은 다행히 6개월째부터 회복증세를 보이더니 1년이 되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1년이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나의 아버지! 명석한 두뇌, 장교라는 명예, 행정가로서의 그 섬세함은 어디로 갔는지, 치매(癡呆) 때문에 나이 많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6남매의 짐을 내려놓으신 이제야말로 당신의 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됐건만, 지금은 오히려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신다. 패기 넘쳤던 젊은 시절엔 즐거움을 밖에서만 찾으려하여 또한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아버지. 이제는 한 여인의 품속에서 휴식을 찾으려나 보다. 여인이란 무엇인지, 애끓던 지난날들은 기억조차 없다는 듯 어머니는 그저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신다. 한 남자의 여인이자,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께 가족의 계보는 끝없이 흘러가는 ‘사랑의 맥(脈)’인 것인지. 가족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날품을 팔아 간직한 돈을 속바지에서 꺼내어 손자들에게 내미신다. 어머니는 대지(大地)가 모든 것을 흡수하듯 남편과 자식, 그리고 그 후손까지 품에 안은 것이다. 여인이란 그저 돌봐주고 베푸는 기쁨에 살아가는 존재인 것처럼, 자연의 이치와 철학이 모두 그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어머니의 눈빛은 여전히 말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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