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사랑방

2007.03.05 13:49

이의 조회 수:64 추천:12

사랑방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의 사랑방은 우리나라 고유의 주거형태의 하나다. 아마도 조선왕조 500년의 철저한 유교사상이 빚어낸 남자 우월주의에서 생겨난 생활방식이 아닌가 한다. 사랑채는 양반집이나 부유한 중산층의 집 앞에 의젓이 버티고 있었다. 사랑채를 통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으니 그 집의 관문인 셈이다. 그 관문은 남자들만의 공간이며 모든 활동의 근거지였다. 남자들은 안방에서 밥만 먹으면 사랑방에 가서 기거했다. 그곳은 사교장인 동시에 소문의 근거지이며, 공부방이기도 했다. 긴긴 겨울밤이면 서민들의 사랑방은  멍석이나 가마니를 짜거나 짚신을 삼는 일터가 되기도 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밤새워 이야기책을 읽는 시간도둑이었다. 어느 사랑방은 당파 싸움의 음모의 장이 되기도 하였으니 조선왕조 500년의 사랑방은 그 사회의 명암과 정치가 공존한 현장이었다. 할아버지의 사랑방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한약방으로 사용할 때는 환자들의 대기실이며, 침 시술처로 사용되었으며, 어두움이 찾아오면 글방으로 변신되어 책을 읽는 독서실로 변하였다. 방학이 되면 대소가의 서울 학생들의 집합장소가 되어 할아버지의 고대문학 해설과 전해져 오는 옛날 옛적 얘기는 밤이 짧음을 아쉬워하곤 했다. 그중에도 삼국지 제갈공명의 전후 출사표 낭송은 백미로, 가신지 30여 년이 지났어도 내 머릿속에서 떠날 줄 모른다. 중학교 때는 삼국지를 몇 번씩 읽으며 제갈량의 출사표를 외워보려 했지만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나에게는 그만한 재주가 없어 아쉬웠는데 내 큰아들에게 전해져 조상에게 감읍할 뿐이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라는 소설을 보면 사랑방 손님이 남자라는 것을 궂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랑방 손님이 곧 남자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게 된다. 이렇듯이 사랑방이라는 곳은 남자들만의 영역이요 권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외래문물의 도입은 먹는 음식을 비롯해, 의복이며 주거 형태마저 변화시켜 사랑방이 자취를 감추면서 남자들의 권위도 더불어 사라져 갔다. 가장이 사랑방을 나서서 안채를 향해 가면서 큰 기침 한 번 하면 집안의 대소 식구들은 잔뜩 긴장하여 가장을 맞이하던 엄한 가풍은 오래 전에 사라져 찾아보기 어렵다. 요즈음 아이들의 어른 대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전과 요즘의 세태를 비교하며 씁쓰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주거형식이 한옥에서 서양식구조로 바뀌면서 현관문만 열면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상하가 없고 평등하다. 거기다 두 자녀 낳기 운동이 자식 우선 지상주의로 흐르다 보니 가장의 권위를 실추시키는데 한 몫 톡톡히 하였다. 또한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여자들의 사회진출을  활발하게 하였다, 거기다 남자들의 월급이 부인의 통장으로 들어가니 집안의 경제권이 완전히 여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하느님은 인간을 평등하게 사랑하신다더니 남성들의 권위가 떨어져 여자들의 전성시대를 만들어 주나보다. 남자전업주부라는 신종 단어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남자는 돈버는 기계이고 고개 숙인 남자라는 말조차 회자되고 있다. 머리를 곧추 세울 수조차 없도록 가장의 위치가 땅에 떨어지고 있으니 남자들의 수난시대가 왔음이 확실하다. 자식들의 성(姓)조차 무조건 아버지를  따르던 시대는 가고 선택할 시절이 올온다니, 부계사회가 모계사회로 전환되는는 때가 오는가 싶다. 사랑방의 쇠퇴와 더불어 가장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가는 세월을 탓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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