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막내딸과 된장찌개

2007.03.07 06:54

배윤숙 조회 수:119 추천:12

  막내딸과 된장찌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귀성 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더니 귀경할 때도 영화사 일로 바쁜 막내가 명절 다음 날 큰딸보다 앞서 떠났다. 오히려 밤을 새며 설계작업이다 뭐다 바삐 지냈던 큰딸은 여유작작(餘裕綽綽)하며 민속명절 연휴를 다 끝내고도 하루 더 쉬고 서울로 떠났다. 이사를 한 뒤 처음으로 맞이한 명절에 딸들과 함께 보낸 오붓한 시간이었는데, 떠난 뒤에 이 방 저 방에 남아있는 딸들의 흔적에 또 다시 우리 내외만 남았구나 싶어 씁쓸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졌다가는 또 만나는 것이라곤 하지만…….     딸들이 자취생활을 하지만 직장 관계로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식당 맛에 찌들었을 뱃속을 편안하게 풀어주기도 하고, 모처럼 맛있게 해먹이고 싶어 명절 며칠 전에 막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더니 된장찌개에 두부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애게게? 겨우 된장찌개야?” 명절날엔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드릴 겸 큰댁에 가지만 연휴 며칠 동안 딸들에게 먹일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내 딴에는 바빴다. 나물도 몇 가지 준비했고, 생선매운탕, 쇠고기버섯전골, 갈비찜 등등 하루에 한 가지씩 먹일 참으로 양념이랑 모두 준비를 했지만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가 제일 먹고 싶다는 그 말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사실, 된장찌개야말로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음식이던가. 그러고 보니 이제 좀 있으면 장을 담근다는 얘기들이 슬슬 나올 것이다. 전통을 이어가고자 다행스럽게도 재래식으로 된장을 만드는 곳들도 있지만, 개량식 된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곳들이 많으니 점점 집집마다의 독특한 장맛을 맛보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결혼하여 그 다음해부터 장을 담갔던 것을 어느 해부터인가 하지 않고, 내 입맛에 맞는 곳에서 주문해서 먹고 있는데도 막내는 엄마가 끓여주는 것을 먹고 싶다고 하니 내 어찌 좋아만 할 일이던가. 그렇지만 막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찌개의 된장이 우리 몸에 좋다고 하니 끓여줄 수밖에……. 우연히 접하게 된 설봉 권윤홍 선생님의 ‘겨레의 꿈’이라는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장(醬)에 대한 글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신일(辛日: 辛丑, 辛酉, 辛巳 등)을 피해 장을 담갔다고 했다. 신(辛)은 음(陰)과 통하기에 이날 장을 담그면 간장이 시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장 담글 때 역시 삼라만상이 고요히 잠들려 하고, 모든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날뛰지 않으며, 해도 지고 땅도 접어들고, 나무도 잠들려 하는 유시(酉時: 오후 5-7시 사이)끝 시간인 저녁 7-9시에 담가야 가장 장맛이 나기 때문에 우리 조상님들은 그렇게 해오셨다고 하는 글이었다.   더구나 음력 2월 초순쯤 되어 장(醬) 담글 날을 정하면 그 집 아녀자는 일주일 전부터 외출도 삼가고 밤에 남편과 동침도 않고, 장 담그는 날은 창호지로 입을 봉했다고 했다. 부정을 피하기 위해, 여자의 음기(陰氣)가 입을 통해 장에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그토록 장 담그는 일 하나에도 흐트러지거나 허술함이 없던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가짐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장을 담그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다만 참숯을 넣고 고추를 띄우고 항아리 둘레엔 금줄을 치는 지극 정성만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을 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장을 담그고 한 달 뒤에 건져내는 것이 된장이니, 사천년 넘는 역사가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하리오. 그 책자에는 또 이런 글이 있었다. 된장에도 덕(德)이 있다고 했다. 첫째, 어떠한 음식과도 화합하는 화합지덕(和合之德) 둘째, 갈증을 풀어주는 치갈지덕(治渴之德) 셋째, 부스럼을 치료하는 치악창(治惡瘡) 넷째, 내장을 보호하는 보내장(保內腸) 다섯째, 사랑을 베푸는 자비지덕(慈悲之德)이 있다는 내용으로서 처음 알게 된 된장에 대한 글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된장에 그렇게 깊은 뜻이 담겨있을 줄이야. 연휴 첫날에 도착한 딸들은 진수성찬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네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앉아 식사를 한 적이야 많았지만 새 집에서의 식사가 처음이어서인지 딸들도 적잖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명절날 새벽에 서둘러 정읍 큰댁으로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몸이 불편하신 군산의 큰시누님댁까지 다녀왔다. 그리곤 그 날 저녁에 드디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두부 한 모를 다 썰어 넣었다. 낮에 이 것 저 것 간식을 먹어 저녁 때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건 나 혼자의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밥 한 그릇도 뚝딱, 커다란 뚝배기에 담아 낸 된장찌개를 막내 혼자서 다 비웠으니 미안해하는 막내보다는 오히려 내가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행여 시집가서 시어른과 함께 식사를 하게될 때 어떻게 생각하실까? 며느리가 혼자서 된장찌개를 다 먹는다면?” 내 우스갯소리에 옆에 있던 남편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된장 만드는 회사로 시집보내야 하나?”                                                (200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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