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유모차

2007.03.20 15:44

박정순 조회 수:274 추천:25

유모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중) 박정순 월요일 아침,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어느 분이 귀여운 손자의 백일을 맞았다면서 떡을 돌렸다. 떡을 먹으면서 아기의 백일을 축하하는데 할머니가 손자에게 선물했다는 유모차 값이 너무 비사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모차의 값이 자그마치 129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유모차가 얼마니 좋으면 129만 원이나 주고 샀겠느냐며  한마디씩 하였다. 옆에서 그 말을 들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아는 유모차는 바퀴가 네 개에 아이를 앉힐 자리가 있고, 햇빛을 막아줄 지붕이 있으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 유모차가 129만 원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손자에게 최고급 유모차를 사준 그분이 잘못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상을 초월한 비싼 값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값이 비싼 만큼 최고급 소재와 최첨단 기능을 갖춘 유모차일 것이라 상상하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가격의 유모차 중 129만 원이란 가격표가 붙은 유모차가 눈에 띄었다. 지금은 유모차가 일반화되어 어느 집이나 아이가 태어나면 유모차가 필수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우던 25년 전에는 유모차를 거의 구경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앉아서 아기가 발로 밀고 다니던 보행기가 전부였다. 지금은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두 살 때쯤 보행기를 타고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우리 집의 사진첩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 시절에도 유모차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설사 있었다 해도 형편이 어려워 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모차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해도 도로가 비포장인 곳이 많아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 불편했기 때문에 사지 않았을 것이다. 유모차가 아기들에게 필수품이 된 요즘에 비하여 우리 집은 딸이 타던 보행기를 아들이 물려받아 타고 자랐기 때문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보행기 하나 살 정도의 투자가 전부였다. 그렇게 보행기 하나로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작은 골목과 아파트단지 어느 곳이나 아스팔트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유모차를 사기만 하면 밀고 다니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사람이 당연히 아이를 낳은 젊은 엄마들이어야 할 텐데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이시다. 어쩌다 할아버지나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을 볼 수도 없지는 않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할머니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맞벌이부부가 많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거의 할머니들이 육아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아기를 등에 업고 다녔지만 힘없는 할머니들이 아기를 등에 없고 다니기 어려우니 아기를 키우는 할머니들에게 유모차는 필수품이다. 우리 어린시절처럼 자녀를 여러 명 낳는다면 유모차 한 대를 사서 큰아이가 자라면 둘째에게 대물림할 수도 있겠지만 한 자녀만을 출산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자녀를 키운 다음에 유모차는 거의 쓸모가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한참 더 쓸 수 있는 유모차들이 버려진다. 아기를 다 키운 다음 새것 같은 유모차를 누군가에게 거저 주려해도 남이 쓰던 것을 자신의 귀한 아이에게 주지 않겠다며 새 유모차를 산다. 유모차는 아기들을 안전하고 편하게 태우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아기들이 자라서 더 이상 유모차를 타지 않게 되면 유모차에게 다른 일거리가 주어진다. 길을 가다보면 가끔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빈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나이 들어 허리가 굽게 되면 걸음을 옮길 때 시야가 좁아져 답답하고 사고의 위험도 있기 때문에 유모차 손잡이를 이용하여 허리를 세우고 걷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새것일 때는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들을 태우고 다니다가, 아기가 자라면 할일을 잃고 잊혀지고, 나중에는 나이 드신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는 유모차를 보게 된다. 새 생명으로 태어난 아기들이 세상구경을 시작할 때부터 유모차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 아기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유모차는 우리 인간들처럼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노년기가 되어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수명을 다하는 유모차의 일생을 보면서 인간의 노년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네 개의 바퀴 중 하나가 고장 나서 잘 구르지도 않는 낡은 유모차를 밀고 박스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를 만났다. 혼자 거동하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장 난 유모차를 밀고 박스를 주우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유모차도 처음 출고될 때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아기가 편안하게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한다. 할머니 역시도 젊고 예쁜 시절에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나이가 들어갈 것이다.  할머니가 낡고 고장 난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박스를 줍는 모습에서 같은 처지를 서로 위로하며 의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세월과 더불어 어른이 되고 늙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유모차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유모차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유익을 주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였음에도 유모차처럼 아기가 성장하는 동안 잠시 사용한 뒤 쓸모없이 되는 물건도 흔치 않을 것이다. 쓸모가 없어 보이던 낡은 유모차가 허리 굽은 할머니의 나들이를 도와주고, 생활이 어려운 할머니의 박스를 줍는 운송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서 유모차의 변신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만 아니라 유모차 아래쪽 주머니를 이용하여 아기를 태우고 다니면서도 할머니들의 시장바구니 역할까지 하는 것을 보면 유모차만큼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도 그리 흔치 않을 것 같다. 값의 고하와 관계없이 유모차는 아기가 자라면 거의 쓸모가 없어진다. 값이 비싼 것은 조금 더 소중히 취급을 받을지 모르지만 아기가 자란 다음 운명은 비슷하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사는 동안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좋은 조건의 사람이나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내세울 만한 조건이 없는 사람이나 나이가 들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산다. 그러나 유모차는 가격과는 상관없이 아기가 자라는 동안 제 할 일을 다 하고 아기가 자란 다음에는 허리 굽은 할머니를 부축하고 마지막에는 박스를 줍는 할머니까지 도와준다. 새것일 때는 아기의 필수품이 되다가 나중에는 할머니를 도와주는 유모차를 보면서 나는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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