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종소리가 듣고 싶다

2007.03.20 18:07

정현창 조회 수:163 추천:11

종소리가 듣고 싶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야) 정현창       저녁노을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시간, 가을걷이를 끝낸 황량한 들판에서 저녁식탁에 올릴 감자를 캐던 농부부부가 저 멀리 교회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은은히 들리는 종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은 모자를 벗고 아내는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루 동안 무사히 지낸 것에 감사를 드리고, 일용할 양식을 주신데 대해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행복한 삶의 진정한 모습이려니 싶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기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한 이 그림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프랑스의 화가 J. F. 밀레의 대표작인  ‘만종’입니다. 어린시절엔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꿈속에서 가물가물 들려오던 새벽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온몸에 힘이 솟구쳤습니다. 학교에 가선 그 무엇보다도 기다려지는 건 교무실 창가에서 ‘땡땡땡~’ 울리는 종소리였습니다. 그리도 지루했던 수업시간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참이나 즐겁게 놀고 있을 때 치는 종소리는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이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의 종소리는 105미리 탄피를 긴 막대기로 때려서 집합을 알리는 소리였기에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습니다. 또한 매일 정오에 울리는 성당의 삼종소리와 해질 녘 은은하게 울리는 사찰의 범종소리는 하루를 반성하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딸랑딸랑 두부장사와 청소부아저씨가 울리는 종소리에서는 고단함을 느꼈고, 세밑에 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야의 종소리는 우리들 마음을 제일 경건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양하던 종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새벽잠을 깨우는 교회의 종소리와 학교 교정에서 들었던 종소리가 사라졌습니다. 두부장수와 청소부 종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성당의 삼종소리와 저녁나절 울리던 사찰의 범종소리도 숨어버렸습니다. 오직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와 제야의 종소리만 세밑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새벽에 잠을 깨우는 것은 알람시계이고, 학교에서는 음악이 흐릅니다. 교회와 거리의 종소리는 소음공해라는 오명을 쓰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린시절보다도 엄청나게 늘어난 교회의 종탑 속에는 종들이 사라지고 허전한 우리들의 마음같이 텅 빈 공간만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 종소리 듣는 이여, 번뇌를 끊고 지혜는 자라나며, 깨달음을 얻고 지옥세계 떠나며, 삼계를 벗어나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소서.( 저녁 종송)” 종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캄캄한 세상의 각종 쾌락과 범죄에 깊이 잠들어있는 중생을 깨우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각종 행사와 기념일에만 형식으로 울리는 종소리 외에는 모두 감금되었습니다.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세상이 정신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정의와  진실은 숨어버리고, 퇴폐와 가식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깊은 잠을 깨우는 종소리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양심이 잠들어 있을 때마다 흔들어 깨워주는 종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교회와 학교에서 진리의 종소리가 울려야 합니다. 거리거리에서 정의와 용기의 종소리가 넘쳐나야 합니다. 귀로 듣는 종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뜨거운 피로 듣는 종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종소리는 새소리나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아닙니다. 종소리는 마음입니다. 철부지 아들을 걱정하는 어버이의 애틋한 마음입니다. 무지한 중생을 안아 줄 하늘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어둠을 이기고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는 춘분입니다. 봄이 무르익어 만물이 소생하는 춘분을 맞아 나태와 안일한 잠에 빠져있는 나에게도 참 삶을 깨우쳐줄 종소리가 ‘땡~땡, 땡그랑~땡!'하고 힘차게 울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200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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