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기막힌 오해

2007.03.26 18:09

황만택 조회 수:59 추천:8

기막힌 오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야)  황 만 택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내가 월남전에 파병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곳 전쟁터의 참화(慘火)는 나날이 격화되었고, 시시각각  떨어지는 포탄 소리는 천지를 진동했다. 팬텀 비행기에서 내뿜는 기관총 소리도 고막을 찢었다. 불같은 정글 속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어가는 처절한 전쟁터의 참상은 피를 말렸다.   이런 상황 중에서 나는 '나트랑시(市)'에서 사이공 주월한국군사령부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날마다 생사(生死)를 같이하는 전우들과 헤어지는 것이 나는 너무나 가슴아팠다. 그러나 우리는 꼭 살아서 내 조국 대한민국에 돌아가 꼭 만나자는 굳은 언약을 하며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이제 막 한국에서 파병되어 온 병사들 몇 명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는 미군(美軍) 병사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소음이 매우 커서 옆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월남 땅의 늪지와 정글은 살벌한 전쟁과는 달리 오직 아름다운 풍경만이 열대의 나라를 지켜주는 듯 평화스럽게 보였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뒤. 한국 병사들과 마주앉은 미국 병사 중 한 명이 유독 나에게 눈길을 맞추더니 자기 혼자 뭐라고 중얼 거리면서 나에게 장난을 거는 거였다. 영어(英語)라면 나는 yes. no. ok 정도 밖에 모르는데 왜 이러나 하면서 약간 당황했다. 그 미군 병사가 왜 나에게 말을 걸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그저 피식 웃어주는 정도였으나 나중에는 자꾸 장난을 걸어와 나도 오기가 생겼다.   '니가 미국 병사면 나는 한국병사다.똑 같은 전쟁터에서 내가 너한테 꿀릴 것이 뭐가 있냐. 비록 너희가 우리보다 조금 더 잘 사는 나라일지는 모르지만 여기 비행기 안에서까지 너희들에게 한국군의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 보아라! 내 전투복 양 어깨에는 대한민국 사단 마크가 선명히 붙어 있지 않느냐.  나는 나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군인이다.' 이렇게 속으로 곱씹으며 기(氣)를 세웠다. 그리고 또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나는 무조건 내 말을 알아듣던지 말던지  yes. no. ok 하면서 나도 웃으면서 한국말로 손짓 발짓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이 광경을 옆에서 한참 지켜 본 한국군 병사들은 제 각기 "저 사람 진짜 영어를 잘한다."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뒤 나는 주월한국군사령부통신대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그 곳은 통신 장비가 불통(不通)이 나면 미군 측에 빨리 연락하여 개통시켜야 했다. 만약 신속히 개통을 시키지 못해 작전에 지장을 주면 통신대장은 엄한 문책을 받게된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영어 잘 하는 한 병사가 맡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귀국을 하게 되었다. 이에 당황한 소대장은 그 즉시 각 부서에 있는 전 소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영어 잘 하는 병사가 있는 지를 확인했던 모양이다. 그 때 나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왔던 병사들이 '황 일병' 그 사람 영어 기똥차게 잘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전날 밤 야근을 하고 숙소에 있었는데 소대장이 나를 급히 찾는다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근무처로 갔다. 소대장은 나를 보자 반가운듯 "황 일병, 너 영어 잘하지?" 하고 물었다. 나는 뜬금없이 묻는 말에 "예? 영어라뇨? 나 영어 못하는데요." 이렇게 대답하니 소대장은 처음엔 자기를 속이는 줄 알고 "이것 봐라? 너 정말 영어 못한단 말이야? " 하면서 부드럽게 몇 번 더 말하더니 정말 못하는가, 재차 또 물었 "정말 못합니다." 묻는 대로 몇 번을 반복했더니  화가 난 소대장은 느닷없이 내 뺨을 한 대 때리면서 "임마? 너 비행기 안에서 미군 애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 있는데 나를 속여? " 했다. 나는 느닷없이  뺨을 맞는 순간 그 때 생각이 머리에 번개처럼 스쳤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내 딴엔  한국군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고 기(氣)를 세운 것뿐인데…….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오해를 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소대장은 다시 말했다. "명령이다. 영어 잘하는 병사가 올 때까지 네가 인수를  받아라. 알았지? 그동안 불통이 나면 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개통을 시켜라. 알았나? " 했다.  그 뒤. 나는 서툰 영어 몇 마디에 뺨까지 얻어맞고 할 수 없이 억지 인계를 받아 고생을 하였으나 나중에는 숙달이 되어 임무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미군병사와  맞서 괜한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황당한 사건으로 돌아올 줄이야 내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 이었다. 그 뒤 나는 16개월간의 임무를 충실히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 미군 병사는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그와 만난 것은 스치는 인연 정도였지만 그도 나와 같이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을 하였는지.  부상은 당하지 않았는지. 혹여 살벌한 전쟁터에서 전사는 안 했는지……. 이제 월남전이 끝난지도 어언 30년 세월이 훨씬 지났다. 참전했던 전우들은 모두 60살이 넘은 노병(老兵)이 되었지만, 그 전쟁(戰爭)의 포성 소리는 아직도 내 귓전에 머물고 있다.  (2007.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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