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핸드폰에도 예절이 있는 법인데

2007.03.28 07:10

배윤숙 조회 수:113 추천:15

핸드폰에도 예절이 있는 법인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중)  배윤숙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올 만큼 바쁜 것도 아니련만 언제부터인가는 몰라도 핸드폰을 옆에 두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었다. 목걸이처럼 하든가, 주머니에 넣는 등 늘 몸에 지니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안방에서 거실로 갈 때는 거실 탁자에 놓아두고, 컴퓨터를 켤 때면 또 책상위에 올려놓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삐삐라는 것이 유행일 당시에는 젊은이들에게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자, 공중전화로 자신한테 연락을 하여 삐삐가 결려온 것처럼 한다면서 그걸 가리켜 ‘삐삐 노이로제’라고 했단다. 삐삐가 아닌 핸드폰 시대가 열리면서 공연히 오지도 않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해둔 것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굳이 시간을 알 필요가 없는데도 액정화면에 나와 있는 시간을 보곤 한다. 나도 가끔 그런 적이 있으니 핸드폰 노이로제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누가 뭐라고 나무라는 것도 아니건만 딸들이 보고 싶어 저장해 둔 것을 찾아서 보는 것뿐이라고 나 자신에게 변명도 해보지만, 나도 역시 점점 핸드폰에 얽매어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청소년들처럼 틈만 나면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주변에서 자녀들의 핸드폰 요금 때문에 걱정하는 일들을 종종 본다. 중학교 입학선물로 아버지한테 핸드폰 을 받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체육관 승표에게, “전화할 여자 친구라도 있는 거야?“ 하고 놀려대니 ‘만들면 되지요.’ 했다.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데 전화하려고 여자 친구부터 만들 작정인가보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핸드폰 요금 때문에 아버지한테 야단맞는 승표 모습이 상상되니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어제는 감기 때문에 목이 아파서 전화가 걸려 와도 반갑지가 않았다. 침을 삼키기도 힘들만큼 목이 아파 진동으로 해놓았더니 식탁위에서 윙-윙-대며 신경을 건드려서 아예 전원을 차단시켰다. 경품에 당첨되었으니 연결을 할 것이냐, K백화점에서는 명절맞이 세일을 시작했으니 많은 이용 바란다는 등 과잉친절 메시지조차도 귀찮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목이 아파도 받아야 하는 것이 전화를 건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전원을 켜고 매너모드의 진동을 해제하였다. 진하게 우려낸 감잎차를 커다란 컵에 담아 두 손으로 감싸들고 소파에 앉았다. ‘띠오옹-’ 소리가 났다. 핸드폰에 전원을 넣자마자 그동안 와있던 확인 하지 않은 메시지 도착 소리였다. 학교 상담활동 중에 만난 현준이다. 나를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직접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었다. 장계에 있는 자동차학교에 면접 보러 가던 날에도 이런저런 도움말을 해주었더니 조금 긴장이 되었던지 합격하면 맛있는 것 사달라고 엉뚱하게 화제를 돌린 현준이다. 친구들과 주고받던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반말처럼 ‘요.’자를 빼놓는 건 무슨 버릇인지.   중학교 과정이야 예능계통이 아니면 모두 같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는 ‘특목고’라고 줄여 말하는 여러 종류의 특수한 진로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받아들인다. ‘특수목적고등학교’란 실업계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특정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교육을 시키는 고등학교라고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그러한 교육과정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하지만 현준이처럼 일반 고등학교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한테는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고 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된다. 면접 보러 가는 날, 긴장하지 말고 잘하고 오라 했고, 또 다행히 합격도 했지만, 습관처럼 되어버린 버르장머리 없는 메시지는 지적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요즘엔 유치원 아이들도 가지고 다닐 정도가 되어버린 핸드폰의 ‘예절무시’는 가히 통탄할 지경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전화를 받으면서 앞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웃었지만 지금처럼 버르장머리 없는 전화예절무시보다는 차라리 인간미 넘치는 그 때가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다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통화를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진동으로 해놓거나 전원을 꺼두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황당한 일들도 종종 본다. 남이야 듣든 말든 큰소리로 얘기하는 것도 옆에 있어 듣는 사람만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도 그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메시지는 또 어떠한가. 청소년들이 주로 쓰는 깨뜨려진 글자들은 세종대왕님만 통탄할 일이 아니다. 알아보기도 힘든 이상스런 글자들은 세대차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정도를 넘어섰다. 연락을 꼭 해야 할 상황에 상대편이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이 무에 그리 힘들다고 메시지만 달랑 남기는지 모를 일이다. 메시지가 오면 '아하!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구나!' 싶어 전화를 하노라면 상대방은 무슨 얘기가 그리 많은지 전화를 건 내가 무색해진다. 자신의 핸드폰 요금은 아깝고 상대방의 것은 아깝지 않다는 얘긴지 끝이 없다. 차라리 한동안 연락이 없어 안부 메시지 보낸 것이라고 하면 예쁘기나 하겠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주고받는 메시지야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른들께는 좀 삼가야지 않을까 싶다. 직접 찾아가 뵙지는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갖고 전화로 안부를 여쭙는 것이야 이해 못할 것이 없겠지만, 메시지 넣는 시간에 차라리 전화를 하여 직접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아랫사람이 안부 전화를 했을 때 윗사람으로서 고맙게 생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리타분한 생각일까? 며칠 전, 어떤 도의원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굳이 일일이 전화를 하지 못할 상황이어서 안부메시지를 작성하여 여러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보낸 것이었다. 다음 선거 때 표를 의식, 관리 차원에서라 하더라도 그 많은 전화번호를 일일이 눌러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이해가 된다. 물론 메시지를 작성하여 회원들에게 보내는 것을 도의원이 직접 할 리가 있겠느냐는 또 다른 생각도 하였지만 말이다. 학교에서도 상담하는 학생들과 핸드폰예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처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화를 만드는 회사에서 한 번 읽고 버릴지라도 전화예절에 대한 안내문을 작성해서 상품포장을 한다든지 하면 어떨까. 한 번쯤은 읽고 넘어갈 수 있게끔 된다면 그 것 만으로도 전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감기로 목소리가 변해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현준이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기숙사로 들어가서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2007. 2. 7.)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