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고부간의 사랑

2007.04.08 15:51

김금레 조회 수:130 추천:4

고부간의 사랑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김금례    오늘은 친구와 함께 건지산에 올라 꽃을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퉁퉁거리며 뛰어나오는 손자손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큰아들 가족들이 기거하다 떠난 방문을 열어 보았다. 휑하니 비어있었다. 새 둥지로 떠난 지 한 달이 넘었건만 지금도 함께 사는 것처럼 순간순간 착각을 한다. 큰아들네 식구와 함께 살았던 9년 세월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리움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예로부터 집안이 잘 되려면 남의 자식이 잘 들어와야 한다고 했었다. 큰아들 결혼 날을 받아놓고, 고뇌에 잠겼었다. 핵가족시대라 분가를 시키고 싶었지만 남편의 고집으로 1,2년 함께 지내기로 했다. 나는 무거운 짐을 진 느낌이었다. 고부간의 갈등이란 말이 머리를 스쳤다. 고부간의 갈등은 엄마가 아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며 가정의 평화를 깨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나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평소 마음씨 고운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딸과 며느리가 똑같다고 하시던 언니는 모두 출가시키더니 며느리와 딸이 같을 수 없더라고 했다. 그 말씀이 아직도 내 귓전에서 맴돈다. 교사인 딸과 며느리 집에 가서 땀을 흘리면서 혼자 청소를 했더란다. 딸은 어머니가 집을 깨끗이 청소한 것을 보고서 “고마워요, 어머니!” 하면서 가슴에 안겨 포옹을 했단다. 그런데 며느리는 사생활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 다음에는 청소하지 마세요!” 하더란다. 똑같이 청소를 했는데도 받아주는 쪽에 따라 반응이 다르더라고 했다.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정원속의 나무로부터 지혜를 얻었다. 어린 모과나무, 감나무 등을 심어놓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며 뿌리가 내릴 때까지 정성들여 가꾸지 않았던가. 자연이나 우리 인생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피를 나눈 부모형제를 뒤로한 채 낯선 남자 하나만을 보고 떠나온 그 마음을 우리 가족들은 어루만져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마음은 낙하산과 같아야 한다. 내가 펼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낯설어하는 며느리에게 다가가 내가 먼저 이 집에 들어왔으니 큰언니같이 생각하고 ‘새아기’라는 호칭보다는 며느리의 ‘이름’을 부르겠다고 했다. 바로 ‘명숙아!’하고 이름을 불렀다. 명숙이는 나를 마주하며 환하게 웃었다. 둘째딸과 나이가 같아 부르기 쉬웠는지도 모른다. 실수나 서운했던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찾아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평생 청렴결백으로 살아온 남편은 가족들의 빨래를 접으면서 며느리인 명숙이 속옷까지도 접는다. 주름진 남편의 그 손이 너무 아름답다. 아름다운 남편의 손이 있었기에 3대가 함께 살면서도 얼굴 한 번 붉힐 일이 없었다. 주고받는 정 속에서 며느리 명숙이는 1남 1녀의 엄마가 되었고, 태양과 같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해바라기처럼 웃는 예쁜 딸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내외는 한 울타리 안에서 손자들의 재롱에 푹 빠져 행복했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돌아온 막내아들네 식구들과 함께 살기엔 집이 너무 좁았다. 큰집으로 함께 이사를 하려고도 생각했지만 20년 넘게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날 수 없어 큰아들 가족을 분가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딸을 시집보낼 때처럼 아낌없이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어머니 마음이다. 모든 이삿짐을 다 보내고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새 아파트로 향했다. “준석아, 이제 너희 집에 간다.” “아니에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큰아들 내외가 큰절을 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만남의 기쁨보다 헤어지는 마음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정만 남겨놓고 떠나버린 명숙이는 날마다 전화로 인사를 하고 손자손녀는 전화로 뽀뽀를 한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대가족제도가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부모들은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서로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뒤 시어머니 제삿날이었다. 9남매가 다 모였다. 40년 세월, 미운 정과 고운 정이 용광로 속에서 다져진 형제들의 만남은 즐거운 축제나 다를 바 없었다. 모두들 행복한 모습이었다. 명숙이도 이사하느라 피로하겠지만 시할머니 제사에 연가를 내고 아침부터 달려왔다. 고마웠다. “똑 딱!똑 딱!” 부엌에서 들려오는 고부간의 도마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찾아오실 시어머님도 무척 흐뭇해  하실 것 같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