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선운산의 봄

2007.04.11 17:07

이강애 조회 수:102 추천:7

선운사의 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기) 이강애 받아논 날이 내일 모레인데 며칠 전부터 기다려지는 수필창작 기초반 문학기행! 오늘 나는 들뜬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교육원에 도착하니 모두 와 기다리고 있었다 승용차 네 대로 나누어 탔다. 내 차는 놓아 두고 회징님차에 여자 문우 세 사람과 같이 타고 갔다. 착각도 자유라 했던가,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우리를 반겨 맞아 주는 듯 벚꽃이 춤을 추고 복사꽃 사과꽃이 덩달아 환영하고 있었다. 여행보다 즐거운 것이 또 있을까.톨게이트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한 사람이 "저것 봐, 저것 좀 보라니까! 벚꽃이 장관이네," 하니까, 또 한 사람이 "저 꽃도 우리 또래구만 뭐. 질려고 하잖아? 다 되었다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은 "그런 소리 마. 인생은 육십부터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니까." 즐거운 다툼을 하면서 정읍 톨게이트를 벗어나 고창 선운사 방향으로 들어서기까지는 잘 왔었다. 그런데 가다가 그만 길을 잘 못들어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물어물어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니 풍천장어집이 줄비한 어느 음식집 앞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 장군이 정해놓은 음식집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풍천장어구이로 먹는데 배가 고픈지 잘들 먹었다. 먹기 전에  우리 김학 교수님의 말씀에이어 이수홍 회장님이 가져온 한산민속주를 마셨다. 또 먹으면 요강이 뒤집어진다는 복분자주를 주인이 주어서 마시기도 했다. 문우들의 건강과 발전을 위하여 회장님의 선창으로 떠나갈 듯 건배사를 외치고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이 장어는 바다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풍천에서 잡히는데 영양가 만점이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했던가. 맛있게 점심을 먹은 뒤, 선운사 입장권을 끊어 들어가는데 65세 이상은 경노라 무료입장이란다. 이 무료가 나를 서글프게 함은 웬 일일까. 선운사 가는 도중에 미당 서정주의 시비를 읽으며 선운사에 들어가 대웅전 뒷뜰을 뒤덮은 동백꽃을 구경하며 환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편 나는 조금은 퇴락한 듯 떨어진 동백꽃송이에서 비애를 느꼈다. 또 앞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수선화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모두 모여 사진을 찍을 때는 모두가 '김치!'하면서 웃었다.   경내를 벗어나 우리 일행은 꽃잔디가 한창 멋을 내는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식과 곡차로 흥을 돋우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데 일부는 도솔암을 보러 나섰다. 항상 선운사 변죽만 돌아 봤던 터라 나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도솔암까지는 3km로 길 양옆의 꼬불꼬불한 나무터널을 지나니 높 낮이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만해 걷기 좋은 계곡길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물소라도 정겨웠다. 그 산자락엔 풀의 계곡으로 국내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답게 온 산자락에 넘쳤다. 지천에 깔린 꽃무릇은 9월에서 10월사이에 피는 꽃으로 꽃말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란다. 옛날 스님을 사모하던 여인이 그 스님을 그리워하다 꽃이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이라고 한다. 이 꽃은 잎이 지고 나서야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나서야 잎이 피는 꽃으로 꽃과 잎이 함께 피는 법이 없다는 꽃이어서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선운사와 도솔암 중간쯤에 장사송이 서 있는데 어찌나 으젓하고 보기 좋은지. 이 장사송을 진흥송이라고도 하는데 천연기념물 354호로 약 600살 정도로 추정하며 높이 23m, 둘레가 3m, 높이 3m정도에서 줄기가 갈라져 부챗살처럼 퍼진 것이 참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 소나무 옆 팻말에는 나무의 내력이 씌어져 있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지 땅이  매끌 매끌했다. 교수님은 여기서 도솔암이 얼마 안되니까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가도가도 도솔암이 안보여 내려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얼마 안가면 도솔암이라고 했다, 가다가 또 물어 보면 또 얼마 안 남았단다. 얼마쯤 가니 도솔산에 위치한 작으마하고 아담한 암자에 도착했다.어찌나 힘들여 왔던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도솔암 옆 내원궁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는데 벌써 문우 이의 여사는 절반이나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계단이 가파른지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직 멀었어?" 하면 "응, 아직 멀었어."하더니 "안 올라오는 게 좋아." 하기에 '당신이 가는데 내가 못갈소냐?'하는 오기로 따라 올라갔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고 옷은 다 젖었다, 그래도 힘은 들었지만 올라가고 보니 평풍이 둘러친 듯한 산 위에 암자가 있고, 그 안의 부처 이마에 금으로 테를 두르고있어 다른데서 보지 못한 특이한 불상이 있었다. 너무도 이름다운 경치에 빠저 감탄했다. 내원궁 서쪽에 바위벽에는 높이 17m의 마애불상이 새겨져 평화롭게 우러르고 있는 듯했다. 내려오려는데 도솔암 앞 마당에 늙은 고목나무에서 탁목조 한 마리가  딱딱딱 쪼아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잘 가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총무한테서 빨리오라는 전화가 왔다. 서둘러 내려오는데  왜 그리 발걸음이 더디고 더딘지.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 미안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즐거웠던 선운사의 봄나들이는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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