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판소리 배우기 100일째
2007.04.22 09:53
판소리 배우기 100일째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야) 황 만 택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100일이 지나면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삶을 알아보게 된다. 아기에게 웃음을 주면 아기는 방긋방긋 웃으며 사물을 식별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것저것 세상을 하나 씩 익혀 가는 것이다.
내가 판소리를 배워 보겠다고 전북도립국악원에 무작정 다닌 지가 3개월10일이 되었다. 처음엔 어색했던 모든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어느새 선생님부터 친밀감이 느껴진다. 아기가 클수록 점점 세상에 눈을 뜨듯 소리에 귀를 맞추게 되고, 물이 흐르듯 막힘없이 들리는 판소리는 나에게 방긋방긋 웃음을 준다. 바로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소리의 매력이다.
판소리는 우리 겨레의 전통음악이다. 산천에 핀 꽃들이 향기를 뿜어내듯 판소리에는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춘향이가 한양 간 이 도령을 기다리는 대목에는 분명 한(恨)과 흥이 서려있다. 또한 아버지 심 봉사의 눈을 뜨게하려는 효녀 심청의 판소리 대목에도 슬픔과 기쁨이 배어 있다. 이런 이야기 같은 애틋한 사연을 소리로 가슴과 마음을 통해 절절히 토해내면 듣는 이의 마음은 흥이 저절로 솟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잡아도 잡힐 것 같지 않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아리잠직한 감정(感情)! 어찌 보면 이런 전통음악이 우리네 멋지고 우아한 풍류인지도 모른다. 판소리는 삶의 멋이요 마음의 여유다. 또 우리 겨레의 기본 토양(土壤)과 정서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판소리에 타고난 소질과 능력이 있어서 국악원에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듣고 배우는 것이 즐거워서 스스로 다닌다. 그곳에 가면 중모리 12박이나 중중모리, 자진모리, 진양조 등 북장단 치는 것을 매일 반복하면서 재미있게 배운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심청가'나 '춘향가' 한 대목에 그 동안 배운 북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어느 땐 그 감칠맛 나는 흥겨운 판소리 대목에 장단을 맞추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만 어깨가 들썩이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선생님은 간혹 이런 말씀을 하신다. 국악원에 다닐 적에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즐겁게 다니라고.! 빨리 배운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늦어도 천천히 정확하게 배우면서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다니라 한다. 세월(歲月)을 이기라는 것이다. 긴 판소리 가사 익히기와 북 장단은 반복하면 저절로 숙달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국악원에 오래 다닌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추임새도 잘 넣는다. 장단에 맞는 멋진 추임새 한마디는 소리판을 훨씬 더 생동감(生動感) 있게 한다. 더불어 판소리 한 대목도 한 결 더 멋지게 들린다. 얼씨구!~~ 좋다!~~ 어이!~~ 이것이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지 100일째 되는 내 귀의 열림이다.
(2007.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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