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아이야,창밖을 내다보렴

2007.05.22 07:50

김경희 조회 수:168 추천:8

아이야, 창밖을 내다보렴 - 자폐증을 앓고 있는 준호를 보며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孩苑 김경희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 겨우 카페를 찾아 마주앉게 되었는데 다짜고짜 그녀는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선생! 나, 내년부터는 특수학급을 담당해야 할까봐! 어떻게 생각해?”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무지하면 용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특수학급의 원아수가 적으니 일반학급을 맡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이라고…….   그녀는 요즈음 업무에 지쳐서 집에 돌아가면 쓰러져 잠부터 잔다고 한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내가 어찌 그 심정을 모르겠는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자면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허기져 지쳐버리게 된다. 오후시간을 또 잘 버티려면 점심을 충실히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아이들의 식사지도를 하다보면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다. 먼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간 아이들은 교실에서 위험하게 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상황들이 늘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특수학급의 한․두 명이 일반학급의 원아를 지도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지난해부터 특수아를 지켜본 나로서는 그녀의 행동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금기였다. 그러한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간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간혹 주변에서는 섣부른 동정심으로 그 길에 뛰어들려는 사람들을 본다. 그 사람들 역시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일은 누군가가 꼭 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간 큰 낭패를 볼 것이 뻔하다. 교육대학을 다닌 사람과, 일반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하여 교사가 된 사람과는 마음가짐이나 준비가 다를 것이라는 내 선입견과 같다고나 할까. 진정 그 길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 길을 알아보고 상황을 접해본 뒤에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불행에 빠뜨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노파심에서다.   3년 전, 나와 함께 이곳에 부임한 그녀(특수학급 담당교사)가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던 그날이 떠오른다.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통합하여 교육하려 하나 다른 교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상사의 명령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교사들의 심정은 일반학급에서도 행동이 유별나 수업분위기를 망치곤 했던 아이를 꺼리는 실정이었다. 하물며 특수아가 들어와 교실분위기를 온통 망치지나 않을지, 그것을 염려하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와 통합교육을 실시한지 벌써 2년째로 접어든다. 우리 반이 된 그 아이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늑대소년’이었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해 인간의 행위를 배우지 못한 아이. 그 아이를 보니 도대체 부모들은 그동안 무엇을 한 것인지 원망스러웠다. 보통의 아이라면 놀이의 상대가 없어도 혼잣말을 즐기며 놀이를 할 텐데, 그 아이의 입에서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 그림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행방을 찾기도 어려웠다. 아이에게 문(門)은 또 무엇인지? 다른 아이들에게 문은 필요시에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었지만 그 아이는 달랐다. 문은 아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출구요, 한 번 밖으로 나간 아이는 다시 되돌아올 줄 몰랐다. 아이는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문만 보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안전에 염려가 되는 우리는 교실에 잠금장치를 해야 했다. 그러나 화장실문까지 차단할 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는 늘 비상사태였다.   아이는 5살(만3세)이었지만 스스로 신변처리를 하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유치원에 왔다. 하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알몸이었고 바닥에 오줌을 싸놓기가 일쑤였다.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니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다. 전문가의 판독을 받지는 않았으나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자폐증이 분명했다. 간식이나 식사시간은 또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지. 우유 외에는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아이를 다독여 밥을 먹이는 것은 하루 중의 가장 큰 고역이었다. 아이는 음식을 먹지 않으려 큰 소리로 울거나 떼를 쓰며 바닥에 누워버렸다. 말 못하는 헬렌켈러가 정녕 그러했을까? 생명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일조차 과제가 되어버린 그 아이와의 싸움은 어쩌면 그녀 자신과 맞서는 긴 싸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잠자고 있는 아이의 감각을 일깨우고 말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이 몸의 여기저기를 만져주고, 주물러주고, 장난을 치며 신체적 감각을 일깨우려 노력하였다. 또 돌 지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듯 자신이 녹음기가 되어 끊임없이 같은 단어를 반복하였다. 그렇듯 그 아이가 사회인으로서 수행해야 될 과제가 있었다면, 같은 반이 된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 아이와 더불어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었다. 그 아이는 교사가 제시해주는 자료들을 몸으로 가리거나 호기심에 교재를 집어가는 것이었다. 귀를 기울여야 될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는, 장난감을 떨어뜨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공사판의 소음처럼 들려오게 했다. 행동이 조절되지 않는 그 아이는 수업의 방해꾼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만약 그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면 특수교사의 역할은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그 아이를 보살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교육이 보호․수용에 그친다면 아이가 어찌 세상속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비록 다른 아이와 같은 단계를 걸을 수는 없을지라도 아이의 수준에 맞게 교육에 참여시켜야할 것이다. 한편 그 아이 때문에 피해를 본 다른 아이들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거나 고자질하러 오느라 바빴다. 평소 그런 아이를 접해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차츰 달라졌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며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게 된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럴 때 부모라면 부모로서 역할을 찾아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깨져있었다. 교사와 함께 아이의 성장을 도와야할 부모들은 오히려 치료의 대상이 된 듯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화를 내기 일쑤요,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의 짐을 감당한 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부모의 협조가 필수인 그녀는 근무시간 외에도 그런 부모들을 이끌어주고자 부모와 상담하는 시간으로 많이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애쓴 결과인지 한 학기가 지나면서부터 아이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신변처리를 하게 되었고, 말의 형태는 갖추지 못했으나 아이는 소리를 내며 놀이를 하였다. 편식은 많았지만 그런대로 주는 음식을 받아먹었다. 눈을 맞추는 횟수도 예전보다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즈음엔 아이가 얼마나 신이 났는지. 글씨에 관심이 많아 신문을 즐겨보던 그 아이는 익숙한 글씨를 보면 발음에 힘주어 말하려 애쓴다. 바람처럼 떠돌던 아이가 이제는 차례를 기다리기도 한다. 신체활동시간엔 얼마나 좋아하는지, 제 차례도 아니건만 몇 번씩이나 앞에 나와 동작을 반복한다. 그 시간엔 다른 반과 통합하여 교육을 실시하는데, 아이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P교사는 왠지 아이가 못마땅하였나 보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아이를 지켜본 우리는 그것이 최선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벅차오르는 감동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그 동작을 해내려면 얼마나 그 행동을 눈여겨보아야 했겠는가? 그것은 곧 잠자고 있는 아이가 외부의 세상에 관심을 돌렸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동작을 해내며 스스로 박수를 치고 있는 아이를 보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엄마와 아빠라도 되는 양 두 눈을 마주치며 깔깔깔 웃음보를 터트리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멀기만 한 길,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아이다. 한없이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얼굴이 지금도 문만 열리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아 늘 불안하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무척 가슴 아팠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이의 치료를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 부모가 아이를 좀 더 일찍 받아들였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미련이 남는다. 또 그렇게 많은 날들을 실의에 빠져 헛되이 보내고, 그토록 어머니의 마음이 어둡지만 않았어도 아이의 상태는 지금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요즈음엔 선천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을 낯선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그와 달리 이 세상엔 서로의 손․발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봉사’란 인간의 세계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이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아와 더불어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장애아는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이 순간에 향기처럼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   “숲 속의 나무처럼, 그 나무 옆의 들꽃처럼.” 서로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삶! 정녕 인간이기에 가능한 세상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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