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도자기 반상기

2007.07.22 08:35

정원정 조회 수:89 추천:12

도자기 반상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원정                                                              오늘은 웬 일인지 꼭 가을을 꾸어다 놓은 듯한 날씨다. 하늘색이 어찌 저리도 고울 수가 있을까. 공기가 맑다 못해 가까운 산들이 마치 갓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열아홉 살 아가씨의 얼굴처럼 개운해 보인다. 날마다 뿌옇고 후텁지근하던 날씨는 어디로 다 날아 간 걸까?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이토록 맑고 상서로운 하늘과 땅 사이를 감히 태풍이 밀고 올 수 있을까?  아마 오다가 짐짓 놀라서 다른 길로 비껴가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장마철이라서 앞산이 희뿌연 안개나 는개에 가려서 가슴마저 답답했었다. 오늘은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다. 한지공예 함(函) 한 쌍-큰 것, 작은 것-도 완성을 했다. 가슴을 펴고 마당에 내려섰다. 마침 작업하다 놓아둔 게 있어서 열흘 만에 끝마칠 수가 있었다. 이제 마무리로 락카 칠만 하면 된다.   함은 혼인 때, 신랑 집에서 채단(采緞)과 혼서지를 넣어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것이어서 화려한 색상으로 만들었다. 늘 해오던 솜씬데도 매양 작업은 어렵다. 기능을 가진 목공소에 의뢰해서 만든 오동나무상자 골격에 풀칠한 한지를 안팎에 발라야한다. 말려가면서, 다시 한 번 더 바른 다음, 따로 낱장에 걸맞은 문양을 조각칼로 오려야 한다. 차분하게 시간을 두고 해야 한다. 또 다음은 일일이 색을 맞출 종이를 가위로 잘라서 그것을 오려놓은 문양에 맞게 그 위에 배접하면 모양이 만들어진다. 섬세하고 기술이 요한다. 이 대목이 숙련된 솜씨가 들어나는 과정이다. 마음 같아서는 짝을 맞추어 반듯하게 만들려 하지만 풀칠한 종이는 말을 잘 들어 주지 않는다.  무엇이나 그렇듯 완성과정은 정신을 몰입해야하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해야 성사되는 게 아니던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아무 것도 모른다. 오로지 그것 밖에는. 내가 함을 이번까지 열한 벌을 만든 셈인데 여전히 어렵다. 만들어 놓고 보면 솜씨는 조금씩 느는 것 같은데 번번이 흠투성이다. 잘 됐던 못 되었던 성취감도 있다. 오늘 같은 날, 맑고 햇빛과 바람이 적당한 때 마지막 마무리 칠을 하는 게 좋다. 함을 받을 분은 내가 언니처럼 모시는 동문이기도한 한 장로님의 따님이다. 그는 도예가 이면서 화가이기도 하다. 두 가지 다 개인전, 단체전, 수상 경력이 다채롭다. 참 재능이 있고 머리도 좋은 분인 듯싶다. 작년 일이다. 그의 쉼터나 다름없는 강원도 묵호의 작은 아파트로 초대를 받았다. 앞 뒤 바다가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있는 빈집에 그의 어머니와 친구 두 분, 나 넷이 며칠 머물었었다. 나만 빼고 다 80세가 넘은 분들이다. 벌써 그 뒤 한 분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서로 만나서 즐기는 동안 그곳에서 인상 깊었던 게 도자기였다. 식기, 물잔, 벽걸이, 화분, 쟁반 등 온통 도자기 일색이었다. 도자기 식기에 밥을 담아 먹으니 그 질박한 그릇에서 오는 느낌 탓인지 맛이 한결 더 좋았다.   나는 평소 도자기는 욕심내지 않았다.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나와는 먼 거리에 있던 도자기가 눈앞에서, 먹는 식탁에까지 오르는 걸 보고 혹했다고 할까. 그곳에 있는 것은 초기에 만든 거라서 덜 귀하게 여겨 빈집에 갖다 놓았다는데 내 눈에는 무척 좋아 보였다. 그의 서울에 집에는 작업실까지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그 뒤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그의 도예전이 열렸었다. 그 전시회에 가보고 더 놀랐다. 정말 탐나는 작품이 많았다. 얼마 뒤 그가 내 몫으로 반상기 한 벌을 만들어 놓았다는 전갈이 왔다. 기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도자기는 파손될 우려가 있어서 택배로 부칠 수가 없다. 몇 달이 지났다. 지난 6월 7일, 그들 내외가 서울에서 담양 가는 길에 내 집에 들렀다. 도자기 반상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야생화 꽂을 새긴 귀엽고 깜찍한 화병 둘, 큰 접시 하나, 그리고 열일곱 개의 반상기 한 벌, 투박하면서도 소박한 색상이며 모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크고 작은 질박한 예스러운 그릇을 펴 놓고 그의 지극한 땀과 정성을 헤아려 보았다. 가늠할 수 없는 고마움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내가 누구라고 이 귀한 선물을 놓고 갔다면서 그 정성이 담긴 그릇에 밥을 담아 먹겠느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도자기에 밥 먹을 팔자이니 잘 차려 먹으라고 했다. 사람이란 염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뭐라도 답례를 하고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엌 선반 위에 전시해 놓고 한 달가량 쳐다만 보았다. 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게 도자기다. 문득 떠올랐다. 답례품으로 함을 만들어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혼기가 찬 아들이 있으니 필요할 듯싶었다. 날씨도 좋은 오늘, 마무리로 락카 칠을 한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 그 도자기 밥그릇에 밥을 담고, 또 보시기에 반찬을 담은, -혼자이니 우아할 순 없지만- 고아스러운 밥상을 상상해 보니 벌써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 같다.                                             (2007.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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