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해피 앤드 언 해피

2007.07.30 14:34

공순혜 조회 수:129 추천:10

해피 앤드 언 해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공순혜 어젯밤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요새 해피하시냐고 물었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 영문과를 나와 이제까지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살지만 한 번도 나에게 영어로 말하거나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젯밤 갑자기 해피(happy)하시냐고 인사를 하니 ‘이 애가 왜 이러지, 무슨 음식을 잘못 먹었나?’ 순간 걱정이 되었다. 사연인즉,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이 아침마다 “어머니, 오늘도 해피하게 사세요!” 라고 인사를 하고 간단다. 인사를 받고 보니 그 말이 좋은 것 같아 나에게도 한 번 그렇게 인사를 해봤다며 멋쩍게 웃었다. 혹시 기분이 우울하게 보이면 오늘도 어머니가 언 해피(unhappy)하게 보인다며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를 해피하게 지내시라고 당부하고 간단다. 요즘 너나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어학연수들을 보내니 그 외손녀도 예외 없이 방학만 되면 관광 겸 여러 나라로 어학연수를 보내더니 이제 좀 영어에 친숙해져서 실력발휘를 하는지 인사를 영어로 하는 모양이다. 나도 딸이 갑자기 영어로 인사를 하니 웃음이 나왔다. 우리말로 그냥 행복하냐 불행하냐 하면 좀 무거운 느낌이 들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어로 해피하냐 언해피하냐 하면 가벼운 일상의 감정표현으로 들려 심각해지지 않는다. 영어사전을 들춰보니 happy란 좋은 운수, 심신의 욕구가 충족되어 만족감을 느끼는 정신의 상태이고 평화는 인류의 행복이라고 간단하게 적혀있다. 행동 자유권과 인격의 자유 발언권 및 생존권,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며, 자기 멋에 살고, 멋대로 옷을 입고 단장하는 등의 자유, 자기가 추구하는 행복의 개념에 따라 생활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 9조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써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어떠한 개인도 타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지 못한다.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도 거창하게 되어있다. 행복이란 이런 세세한 내용이 아니라 옛 선비들의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베개 베고 바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빈 마음을 가질 때가 아닐까. 생존경쟁이 하늘을 찌르는 요즘, 젊은이들은 한가한 소리한다고 핀잔하고 얼빠진 사람 취급을 할 소리인 줄 안다. 그래도 유유자적하며 올곧게 살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그리워진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다. 6‧25사변 이후 구호물자인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며 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농약이나 환경호르몬 같은 것은 알지도 못했고, 환경오염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요즘 사시사철 때를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살지만 여러 가지 공포 때문에 전혀 행복하지 않다. 행복이란 소박하고 비어 있고 모자란 것이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문화유산답사반에서 부여 백제문화 탐방을 갔었다. 궁남지 연꽃들을 보는 순간 해피했고, 한국전통문화대학이란 곳에 가서 자세한 홍보내용도 들었다. 더울 때 시원한 한옥의 방과 마루에서 수박대접을 받으니 해피했다. 우리 전통공예를 계승하기 위해 이런 대학이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더 해피한 것은 그 대학 이종철 총장이 문화유산답사반 소권호 회장의 제자여서 하회탈목걸이 하나씩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목걸이나 반지 등 장신구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방안에 못이 하나 박혀있기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방에 들락거릴 때마다 그 하회탈목걸이를 보면 웃음이 나오고 그야말로 우리 외손녀 말대로 해피해진다. 주름진 이마에 초승달 같은 눈매, 복스런 주먹코, 함박 벌어진 입에 웃음이 가득하니 친근하고 소박하며 근심걱정 없는 우리네 시골 노인의 모습이다. 훌륭한 제자를 두어 우리에게 하회탈목걸이를 선물하게 하고 문화유산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주시고 반원들을 이끌고 다니시는 소 회장님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부여박물관에서 구입한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287호로서 높이 61.8cm로 백제사람들이 향을 피우는데 사용한 것으로 1300년 전 7세기 말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하였다고 한다. 향로의 정상에는 힘차게 날갯짓하며 곧 날아오를 듯한 봉황이, 뚜껑에는 봉래산의 신선계가 새겨져있고 본체에는 만개한 연꽃이 조각되었으며, 용을 형상화한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뚜껑에 있는 12개의 구멍에서 향연기가 피어나도록 되어 있다. 비록 작은 모조품이지만 예술성과 섬세함과 신선계의 의미가 깊은 아름다운 향로이다. 보고 있노라면 옛 사람의 정교한 솜씨와 안목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 해피해진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침저녁 우리 집에 있는 이런 작은 물건들을 보면서도 해피해진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늦은 밤, 어둠이 깔린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 그 너머 산등성이 아래 낮고 초라한 집에서 흘려 나오는 불빛을 차창을 통해 볼 때, 나는 쓸쓸함과 외로움 때문에 언 해피해진다. 어느 가을날, 낙엽 뒹구는 설악산 산길을 걸을 때도 그 스산함 때문에 나는 언 해피해졌었다. 12월 30일 격포 앞바다에서 지는 해를 보며 일 년과 인생의 허망함 때문에 언 해피해졌던 적도 있었다. 인생은 늘 해피하거나 언 해피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이 교차하고 겹치면서 지나가는 것 같다. 제 엄마에게 해피와 긍정적인 하루를 가르쳐준 외손녀가 있어서 나는 날마다 해피하다. (2007. 7. 19.)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0
어제:
0
전체:
214,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