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매미를 닮은 여자

2007.08.09 07:53

김병규 조회 수:95 추천:11

매미를 닮은 여자                                          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매미들의 노래에 새벽이 열리는 여름이 왔다. 우리 집의 8월은 매미들의 합창 속에 푹 잠긴다. 그 우렁찬 합창소리는 앞 뜰 두충나무군락에서 들리고, 뒤란의 감나무에서도 들린다. 새벽에 시작하여 저녁까지 들리고, 여름이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들린다. 우리 집은 매미들의 합창으로 여름을 맞고, 그 합창을 끝으로 여름을 보낸다. 여름에만 잠시 동안 살다가 섭섭하게 떠나는 매미들은, 짧은 생명이 서러워서 날마다 그렇게 슬피 우는 걸까, 아니면 짧은 생명을 마음껏 즐기려고 그렇게 신명나게 노래를 하는 걸까? 도대체 판단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매미들의 소리를 ‘매미가 운다.’고 흔히 말하지만 나는 매미들이 노래한다고 말하고 싶다. 매미들의 일생을 생각하면 애잔하다. 매미가 되어 10일에서 20일의 짧은 일생을 살려고, 짧게 4년에서 길게는 17년이나 유충으로 땅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딘다. 그러기에 매미들은 그 짧은 생명을, 때로는 즐겁고 신명나는 노래로, 때로는 짧은 생명이 서러워서 그렇게 쉬지 않고 슬픈 노래를 부르나 보다. 여름만 짧게 살다 가는 매미들은 노래만을 부르려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매미를 닮은 여자가 있다. 매미처럼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여자다. 혼자 있을 때나 일터에서도 흥얼흥얼하다가 때가 되면 신바람 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녀도 한 동안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길인지라 어느 날 예고 없이 불행이 그녀를 찾아 왔었다. 불행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슬픈 사연을 가슴으로 삼키며 그녀의 가는 길은 노래와의 동행이었다. 그녀는 내가 군대에 가던 날 태어났다. 사내를 원하던 집안에서, 딸 3자매의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귀염을 받지 못했다. 큰딸이나 둘째보다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똑같은 환경에서 태어났는데도 차별받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다. 7남매 중에서 괄시 받고 자란 그녀지만 부모에 대한 효성은 제일 지극정성이었다. 공무원의 아내로 쪼들리는 신혼시절에 친정아버지의 의치를 해 드리는가 하면 자주 찾아뵙는 등 지극히 효성스러워 보였다. 그녀가 건실한 공무원과 단란하고 행복한 신혼을 맞은 때는 23년 전이었다. 자식 남매를 두어 행복하게 살던 그녀에게 결혼 6년 만에 불행이 닥쳤다. 불치의 희귀병에 걸린 남편이 10년 세월을 병상에서 반신불수로 보냈다. 남편을 회복시키려는 그녀의 노력은 헌신적이었으나, 그녀의 정성어린 간병도 외면한 채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40대 초반에 청상(靑孀)이 된 그녀 앞에는 어린 자식 남매만 있었다. 한숨과 눈물로 얼룩진 청상 앞에는 온통 절망뿐이었다. 어린 자식 남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남매를 반듯하게 기르며 굳세게 살려고 마음을 다진 것은 남편을 잃은 훨씬 뒤였다. 슬픔을 이기는 길은, 슬픔을 기쁨으로 돌리는 노력이라 믿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가는 방법은 신명나게 노래를 부르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 때부터 그녀는 노래하는 매미가 된 것이다. 마음이 서러울 때 노래를 부르고, 심란하고 고달플 때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하루는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난다. 그녀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남편이 떠난 뒤 5년도 못 되어 구김 없이 자라던 고등학생인 아들이 남편과 똑 같은 희귀병을 앓게 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연장되는 불행의 고통을 이기려고 그녀는 매미보다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고통으로 얼룩진 남편의 병 수발에 이어 자식의 간병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자식의 고달픈 간병으로 그녀는 간병사가 되었고 반 의사가 되었다. 절망과 고통의 세월을 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이 밀려올 때 울음을 접어두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였다. 살아갈 길이 막막한 그녀는 노인사랑건강센터 치매요양원에서 유급 생활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격일제 2교대의 고달픈 근무를 하면서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노래도 계속 부른다. 환자인 아들의 간병에는 불속으로라도 뛰어들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아무리 서둘러도 회복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식의 병 수발과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노래로 마음을 달래며 밝게 사는 그녀의 모습이 곱고 아름다워 보인다.    지난 해 친정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제일 슬피 울던 사람이 그녀였다. 인정과 사랑만을 갖고 사는 그녀의 눈물은 폭포수같이 흘렀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고, 친정아버지와 이별하면서 몹시도 서러웠던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치매노인들에게 돌려드리고 싶다고 한다. 치매노인들의 간병은 만만한 일이 이니라 했다. 배설하는 오물을 온 몸에 바르기도 하고 벽에 도배도 한다는 것이다. 정상으로 돌아왔다가도  갑자기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경우가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 때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나서 더욱 열심히 그들을 사랑할 힘이 솟는다고 했다. 친정아버지처럼 면장을 오래 지내신 분이 멀리 경상도에서 오셔서 정과 사랑으로 모신다고 했다. 그 분이 그녀의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투정을 심히 부리다가도 그녀가 노래를 불러주면 손뼉을 치고 몸동작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대학생인 딸에게 있다. 딸은 재능이 뛰어나 교비(校費)로 미국유학생에 선발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 있으면 기쁜 일도 있다. 슬프고 괴로운 일도 기쁘고 즐거운 일로 돌리려는 그녀의 노력은 숭고하다. 치매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은 진실한 사랑과 아름다운 천사들의 성품이 아니고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들을 정과 사랑으로 모시는 생활지도사야말로 천사라 할 수 있다. 퍼내고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치매노인들을 어떻게 즐겁게 모시겠는가? 오늘도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한없는 정과 사랑으로 치매노인들을 정성껏 모시리라. 나는 그녀의 아들이 하루 빨리 훌훌 털고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기를 빌고, 그녀의 가슴속에 샘물 같은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몹시 덥던 8월 어느 날 그녀가 나를 찾아왔었다. 한 손에는 선물꾸러미가 들려있었고, 다른 손에는 함지박보다 더 큰 수박이 들려있었다. “작은아버지! 저 왔어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의 목소리와 작은아버지의 목소리가 똑 같다며 자주 전화를 걸어온 그녀였다. 무거운 수박을 내려놓고 공손히 인사하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가엔 핑그르르 이슬이 맺혔다. 그녀의 밝고 고운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담겨있어, 나는 얼른 눈물을 감추고 활짝 웃었다.                          (2007.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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