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사명

2007.08.16 09:02

유영희 조회 수:78 추천:5

사명 행촌수필문학회 유영희 1992년 사라예보는 내전이 한창이었다. 밀가루를 공급받아 빵을 만들어 파는 제과점 앞에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그때 군중 속으로 포탄이 떨어졌고, 22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맞은편 창문에서 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었으니 사라예보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였다. 뼈와 살점, 피가 파편처럼 튀는 침혹한 현장을 지켜본 ‘베드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전으로 동족이 죽어가고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과연 본인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베드란’은 단정하게 연주복을 차려입고 오후 4시가 되면 폭탄이 투하되었던 자리에 서서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폐허가 된 도시 한 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베드란’의 첼로연주는 22일 동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졌다. 언제, 어느 곳에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과, 제지하려는 군인들의 구타에도 ‘베드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와일드’는 이 기사를 읽고 벅찬 감동으로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라는 곡을 작곡하였다. 참혹한 전쟁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죽음을 무릅쓰고 첼로 연주를 한 것이다. 유고의 내전이 끝난 뒤, 사람들은 ‘베드란’이 연주를 했던 곳에 꽃을 갖다 놓기 시작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아프간에 갔던 사람들이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두 분이 목숨을 잃었다. 다행이 두 사람이 풀려났지만 남은 인질들의 생사여부가 불투명하여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저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빌고 있다. 명색이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나는 그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관계된 글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한다. 누리꾼들이 써놓은 악플을 찾아 꼼꼼히 읽어보기도 한다. 무엇을 보고 들어도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데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나는 답답하기만 하다. 저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말로만 갑론을박하며 탈레반을 저주하고 기독교인들을 향해 무더기로 돌을 던진다. 방관자처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 고통스럽고 한심할 뿐이다. 우리는 길고 지루한 폭력과 전쟁에 저항하여 분명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총을 들고 아프간으로 갈 수도 없는 일이다. 설교 중에 들었던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생각났다. ‘베드란’은 참혹한 전쟁에 저항하기 위하여 총을 잡았던 것이 아니다. 어느 누구를 향하여 미움을 표하거나 저주를 퍼붓지도 않았고, 정죄하지도 않았다. 다만 말없이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하였을 뿐이다. 자신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재능을 전쟁을 반대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문득 작가가 아닌 음악가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몇 날 며칠이라도 내가 지닌 음악적 재능으로 반전을 위한 연주를 할 텐데……. 청중에게 감동을 주는 목소리를 지녔다면 전국을 돌며 평화를 부르짖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텐데……. 아니, 미술가라도 좋겠다. 화폭에 평화를 가득 담은 그림을 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작가다. 말과 글이 난무하는 세상에 말과 글을 보태는 작가이다. 참된 작가정신을 지녔다면 이 위기의 상황에 평화를 위한 글 한 편쯤 남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대에 따른 사명감을 느끼며, 바른 세상을 위해 바른 말을 해야만 하는 때이다. 무참한 죽음으로 남편을, 자식을 앞서 보낸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웃을 위해 참된 위로와 격려를 보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의미 없는 전쟁으로 죽어가는 숱한 생명들을 추모하며 더 이상 이런 살상은 없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때이다. 안타깝게 나는 여전히 침묵을 고집하고 있다. 시대의식, 역사의식, 작가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확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시시비비를 따지며 누군가를 정죄하는 급급함에서 벗어나자고 오늘은 어렵게 입을 열어본다. 다만 내가 부여받은 알량한 재주이지만 적은 지면을 통하여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과거 인류 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전쟁에 진정한 승자는 없었다. 단 한 사람의 아군이라도 희생양이 되어 죽어갔다면 이를 온전한 승리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종내는 제살 뜯어먹기가 되고 마는 전쟁은 이제 끝나야 한다. 이나마 작은 목소리를 내며 작가로서의 사명의식을 잃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뜨겁고 참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나의 부족한 역량을 절감하며 남은 인질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또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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