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전주음식의 맛과 멋

2007.09.05 06:08

신기정 조회 수:137 추천:6

전주음식의 맛과 멋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야) 신기정 만일 전주를 떠난다면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깨끗하고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경관, 느긋한 말씨에 걸맞은 넉넉한 인심 그리고 곳곳에 살아 숨쉬는 예술혼 등 모두가 놓치고 싶지 않은 유혹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맛깔스런 음식에 길들여진 혀의 고통이 그중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자연주의에 근거한 참살이 음식으로 새롭게 조명 받는 전주음식의 특징은 무엇일까? 먼저 전주음식에는 조화로움이 있다. 온갖 구이와, 회, 무침, 볶음, 탕으로 넘쳐나는 한정식과 다양한 야채와 양념들이 어우러진 비빔밥이 그 예이다. 배와 생강이 어우러진 이강주와 갖가지 한약재를 넣어 달인 모주까지 개별 재료와 음식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창조해 낸다. 또 그릇을 포갤 정도로 연이어 나오는 음식의 제공순서와 배열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음식 외에도 태극선의 중심을 향한 삼색의 소용돌이와 사설과 창이 적절히 어우러진 판소리도 전주문화의 조화로움을 더해준다. 전주음식에는 보는 즐거움이 있다. 각 재료의 색을 살려 자연스럽게 배열하는 비빕밥, 구절판과 색색의 고명을 곁들인 전이나 떡이 그중 으뜸이다. 쉽게 접하는 반찬거리 하나에도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색의 조화가 눈에 띈다. 임산물이든 해산물이든 각각의 고유한 색감을 살리면서도 다른 재료와의 자연스런 어울림이 있어 전주음식에는 눈으로 먹는 맛이 더해진다. 전주음식에는 온전함이 있다. 닭 한 마리를 시켜도 타 지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모래주머니, 간과 염통 그리고 포장마차용으로나 소비되는 닭발까지 남김없이 준다. 미꾸라지나 잡고기를 통째로 끓여내는 추어탕과 오모가리탕, 밥도둑이라 일컫는 꽃게장 그리고 콩나물국밥 위에 얹어주는 동그란 계란 하나에도 온전히 내어주는 온고을의 인심이 담겨있다. 전주음식에는 담백함이 있다. 대부분 천연양념으로 조리하여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한 뒷맛을 자랑한다. 풍부한 일조량과 청정한 자연환경에서 빚은 장류음식이 발달되어 인공조미료로 맛을 낼 이유가 없다. 또 풍성한 곡물과 해산물이 사시사철 넘쳐나니 굳이 염장하거나 말라비틀어진 재료들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남녀노소 출신지역이 어디든 별다른 타박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자연을 그대로 식탁에 옮겨놓은 까닭이다. 전주음식에는 넉넉함이 있다. 다른 지역의 경우 손님이 많은 식당들은 음식 맛이 좋거나 양이 많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러나 전주에서는 맛은 기본이며 싸고 풍성해야만 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딸려 나오는 맛깔스럽고 푸짐한 안주들은 외지인의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되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부담 없이 챙겨 먹을 수 있는 덤과 향토색 짙은 갖가지 후식도 전주음식의 또 다른 여유이다. 예전엔 각 고장마다 나름의 전통음식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찾는 이들의 입맛에 맞추고 장삿속만 생각하다 보니 본연의 맛과 특징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의 음식이 전국구 음식이 되고 심한 경우 다른 지역이 오히려 원래의 맛에 더 가까운 경우도 있다. 거기에 서구화된 입맛에 맞춰 퓨전요리라는 이름으로 국적불명의 음식들이 횡횡하는 시절이다. 전주음식도 옛것만 고집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맛보는 이름뿐인 전주음식과 차별화되는 전주만의 참맛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비빔밥이 항공기 기내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듯이 필요한 곳에 맞춰 쓰면 되는 것이지 본래의 맛과 멋을 포기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흔해진 ‘○○방송 출연’ 광고판 하나 없더라도 나름의 맛이 있는 식당을 찾아보는 것도 이즈음의 쏠쏠한 재미이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전주음식 애호가였던 어떤 친구는 아직도 여행 중에는 간판에 ‘전주’가 들어간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주변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라면 그 방법이 실패를 줄이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이다. 조심할 것은 ‘진주’를 ‘전주’로 잘못 보고 들어가는 것이란다. 사랑하던 ‘님’도 점 하나만 잘못 찍으면 도로 ‘남’이 되듯이 음식점도 점 하나 차이에 즐거워야할 식사가 ‘의무방어’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에 향긋한 모주 한 잔만 곁들여도 지인들과 살가운 정을 나누기엔 부족함이 없는 전주음식의 맛과 멋! 최소한 전주에 있는 동안은 눈 덮인 산정에서 굶어서 얼어 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보다는 진미를 찾아 헤매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로 살아가고 싶다.                                              (2007.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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