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물새에게 길을 묻다

2007.09.16 09:55

김인순 조회 수:88 추천:5

물새에게 길을 묻다                                           전북대학교 평생대학원 수필 목요반  김인순 내가 만일 초등학교 4,5학년쯤 된다면 저 바다를 보고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왔습니다.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하나님도 아셨는지, 오늘 모처럼 보석같은 햇볓을 주셔서 설레는 마음입니다. 지금 뱃머리에 앉아 내 앞에 펼쳐진 새천지를 보는 것 마냥 흐믓한 마음으로 바다를 품에 안아봅니다. 무한이 펼쳐진 바다, 그 바다가 햇볕이라는 조명을 받고 은빛 카팻으로 장식하였는데 뱃고동 소리로 화려한 팡파레를 준비하고 물결에 맞춰 천상을 향한 무도회가 펼쳐집니다. 이쯤 되면 바다를 향한 내 사랑의 반절이나마 표현되었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 세월의 끝자락에서 어제도 오늘도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생을 나누면서 저 바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찝찜한 갯내음으로 온몸은 굳어있는데 못다한 어제의 마음들이 용서를 빌듯이 한없이 또한 한없이 바다를 향해 뿜어내고 있다." 갈매기들은 어디로 갔는고? 그 많은 고기잡이 배들도 없고, 너무나 넓어서 바다 들판이라는 표현밖에 쓸 줄 모르는 서해바다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적당히 파도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120 t 페리호에 몸을 던지고 그 무엇도 용서하여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맑은 물 속에 그저 들어가 버리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승선한지 2시간 반쯤에 동경 125도 58부 사이에 있으며 남북보다 동서간의 길이가 긴 지형. 면적 805.094제곱킬로미터  국토의 l8.1%를 차지하는 이 조그만 섬에 첫발을 내밀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2km도 될 것 같지 않는 길을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보고 저 산 높은 곳의 등대에 가보는 것이 유일한 관광지란다. 해안 관리청에서 세운 이 등대는 이 섬의 모양새에 비하여 월등히 고급스러운 시설이다. 먼 바다를 지키며 밝혀주는 등대에 넉넉한 사무실. 사택도 3동이나 있고 관광객들이 신청하면 쉬어갈 수도 있도록 팬션도 마련하였다. 마루시설로 완벽한 육모정도 훌륭하지만, 앞의 바위 저 너머에서는 청꽁치 낙시꾼들도 눈에 들어온다. 아침 7시 30분에 군산에서 출발하여 이 섬에 내려주고 다시 군산에 다녀와서 오후 4시에 되돌아가야하니 우리는 바쁘게 돌아보아야 한다.   배안에서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는 나를 보고   "여행을 왜 혼자 하세요?" 라며 배안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나그네 길을 가는 거예요." "말씀 한 번 멋지게 하시네. 시인이세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경상남도 삼천포 바닷가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아니에요. 우리 일행이 곧 올 테니 한 3인 분 넉넉히 주세요." 햇볕을 가리는 우산 밑에서 회 3인 분을 먹어야하는 곤욕. "다른 곳에 먼저 간 모양이네요. 잘 먹었습니다." 혼자라서 이상하다는 예감을 깨기 위해서 본의 아닌 거짓말로 변명을 하면서도 홀로이기를 고집하는 이 버릇을 어찌할꼬? 가방 속에 준비해 간 빵과 물병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세워둔 고깃배들을 관찰하다가 "왜 배는 세워두는 거예요?" "예, 저녁때는 다 나갈 거예요. 저녁에 그물을 쳐놓았다가 다음날 걷어오거든요." "아아, 그물에 걸린 고기만 끌어오면 고기잡이가 끝이네요?" 그 어부는 힐끔힐끔 원망스러운듯 나를 쳐다본다. "고기가 얼마 잡혀야지요." "참, 어장이 별로라면서요?" "옛날이 그립네요." 포구에 세워놓은 배가 쭉 한 줄로 두 줄로 겹쳐 세워져 있으니 그것도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바닷가는 백사장이라든지 갯벌이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의아해서 목을 늘이고 이쪽 저쪽을 살펴보았다.먹이를 찾아  인가가 있는 포구에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까욱까욱 앞서 가는 한 마리를 쫒아 날아가는 곳. 저쪽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새를 따라기보기로 했다. 날아간  갈매기들이 무언가 열심히 뻘바닥을 쪼아대고 있었다. 아까 이곳에서 나는 반지락 젓갈을 사가라고 권하던 그 노인이 생각나서, 양말을 벗어 신발속에 끼워넣어 가방에 보관한 다음, 바지를 걷어 올리고 새까만 뻘바닥에 발을 묻었다. 보드랍게 들어가는 발가락 사이에서 뽀르릉 기포가 올라왔다. 이 밑에 무언가 있으렸다시퍼  파보고 주웠다. 어느새 손수건에 한 웅큼 모아졌는데 물새들도 배를 채웠는지 한 순간 소리를 치더니 저쪽 산자락 사이로 날아가 버렸다. 맨발에 운동화만 걸치고 뛰다싶이 물새들이 날아간 산자락 사리길을 찾아 모르내리고, 하마터면 뭐 이렇게 볼 것이 없느냐고 투정을 할 것 같았는데 물새들이 좋은 체험장을 안내하여 주었다.    와! 내 앞에 펼쳐진 해수욕장. 내 안에 싹 들어올 것 같은 조그만 백사장. 지금까지 무료하여 지루했던 마음이 싹 가셔지고 조개껍질 백사징의 한적함이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모래밭에서의 물 속 잔치는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서 하루의 나그네 길이 장식되는 듯 면경같은 바닷물. 그리고 잔 모래의 춤추는 듯 흐느끼는 물결의 하모니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섬을 돌아서 돌아올 때마다 다시 올 것이라고 다짐했던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지금 또 한 번 그 약속을 던져보고 싶다.   "잘 있어, 어청도. 다시 올께, 어청도. 오늘 하루 멋있었어." 이 말은 물새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어청도여, 물새들이여, 길을 안내해줘서 참으로 고마웠다."    오후 4시.약속대로 페리호는 포구에 도착했다. 무심한 사람들은  한아름 짐들을 들고서 배에 올랐다. 넓은 서해바다의 한 가운데 사마귀처럼 박혀있는 쬐그만 이 섬은  아무 매력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관심에서 멀어져 버릴 것같은 애잔함을 남긴 채 점점 더  밀려 나고, 이 섬에 한가닥 연결끈으로 이어지는 이 페리호는 앞으로도 700명 주민들의 육지를 향한 동경심을 싣고서 날마다 2회씩 익숙하게 물결을 가르며 운행할 것이다.      (2007.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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