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수필반에서는 이런 일이

2007.09.22 09:04

황만택 조회 수:51 추천:7

수필반에서는 이런 일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야) 황만택 수필이란 참 묘한 글이다. 원고지 몇 장의 짧은 글인데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며, 잡았다 놓았다 한다. 며칠 전 내가 다니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반 강의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날 교수님과 함께 수필공부를 하면서 '아내의 빈자리'라는 수필을 교수님이 어느 여자 교육생에게 읽으라고 했다. 그 학생은 큰 소리로 그 수필을 읽다가 내용이 어찌나 슬프던지 끝까지 읽지를 못했다. 그러면서 가슴이 에이는 듯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같이 보고 읽던 교육생들마저 모두 마음이 숙연해진 때 가 있었다.  (아래 '아내의 빈자리' 수필 참조)    그 때 나도 가슴이 너무 찡하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참느라 혼났지만,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와 그 수필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즉시 메-일로 보냈다. 후렴으로 상기(上記)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주술을 붙인 다음, 이 글을 나 혼자만 읽기가 너무 아까워 친구한테도 보내니 아내와 함께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어느 인터넷 싸이트에 '아내의 빈자리'란수필을 살며시 올려놓았다. 이렇게 눈물을 보이면서 읽어 본 수필이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하니 이 수필에 약간 의심(疑心)이 갔다. 너무나 완벽한 글인 것 같아 이게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가짜로 꾸민 글일까? 반반(半半)의 생각이 들었다. 수필 내용 중에 그 철 모른 어린아이가  너무나 어른 같은 생각으로 아버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한테서 답장 메일이 왔다. 읽어 본 친구들 마다 가슴이 찡해서 혼났다면서 좋은 글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리고 얼마 뒤 '아내의 빈자리'를 올린 인터넷 싸이트를 열어봤다.거기에도 "너무 슬프다.손수건이 없으면 이 글을 읽지 마라!" "두 사람의 행복을 빈다." 등등의 댓글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나도 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라면서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읽는 순간, 나는 내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잠시나마 그 작가를 반쯤 의심(疑心)했던 내 양심(良心)이 부끄러웠던 까닭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 아이도 많이 성장하였겠지만  '이재종'이라는  그 작가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우리 평생교육원에서 있었던 일화를 얘기하고 왕대포라도 한 잔 나누면서 위로하기 보다는 용기(勇氣)를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2007. 9. 22.) 아내의 빈자리/이재종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 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질러진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 하게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랜인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봐 이불 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전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 전에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나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 조퇴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한 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부모님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붙이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에 우체국 업무가 지장을 받는다는 전화였습니다. 나는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았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받아온 후 아이를 불러 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했습니다.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 동안 우체통이 높아서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갔다고 했습니다.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다며 다음부터는 적어서 태워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아가 라이터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편지 하나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가 나서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 안했어. 난 매일 아빠가 엄마를 생각하면서 우는 걸 봤어. 근데 나는 이제 엄마생각이 안나. 아니 엄마 얼굴도 기억이 안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 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편지를 보고 또 한 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우리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엄마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이지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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