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내가 만일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면

2007.09.22 11:01

오명순 조회 수:110 추천:6

  내가 만일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면 (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기초반 오명순 *고향에 가야겠다. 나의 유년시절의 향기가 묻혀있는 곳. 마치 어머니 품 속 같은 포근한 그 곳. 꿈속에서 자주 찾아 나섰던 그 곳. 마당 한 켠에 놓여 있는 우물. 탱자나무 울타리가 싸리문과 연결되고 담장 안을 빙 둘러 계절따라 꽃이 번갈아 피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자란 미류나무는 끝이 보이지 않아서 꼭대기에 올라가면 달나라에 산다는 토끼를 만날 수 있을까 꿈을 꾸었었지. 매미도 잠든 한여름밤이면 달님의 시선을 피해서 우리 세 자매는 우물가에서 옷을 벗었어. 우물물을 퍼 올리려고 우물속을 내려다 보면 이미 그 곳에 달님이 와 있었고, 우리보다 더 수줍은 달님은 화들짝 놀라 먼저 숨곤 했었지. 구불구불하고 좁다란 학교 가는 길. 개구리를 앞세우고 논길을 지나면 솔향기,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다. 때론 오빠 등에 엎혀서 눈꽃을 보았고 귀신, 도깨비가 나온다는 밤 늦은 하교길엔 동네 머슴아들의 우쭐한 보호를 받았으니 도깨비가 음표를 그리며 춤을 추어도 무섭지 않았었다. 아직 볼이 통통했던 14살 첫사랑의 추억이 숨어있는 아카시아 언덕에 손바닥만한 가슴을 뛰게했던 설렘도 아직 그 곳에 남아 있을까. 내 유년의 흙을 밟고 흙내음을 만져 보며 그 때의 그 나무를 안아 보아야지. *편지를 써야겠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행복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글을 써야겠다.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말들. 다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만 품어 왔던 이야기들. 순간 순간을 떠올리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도록 정성들여 편지를 쓰리라. 선생님께, 친구에게,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당신을 사랑했었노라고, 당신이 있어 행복했노라고 편지를 써야겠다. 미워했던 사람에게도 편지를 써야겠다.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당신의 허락없이 당신을 미워했노라고,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사람이었노라고, 그런데 내 마음대로 미워했노라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당신이 나와 같지 않다고 해서 미워했고, 나를 높여 주지 않아서 미워했으며, 내 마음을 몰라 주어서 미워했노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긴 편지를 써야겠다.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을 떠나야겠다. 산과 들, 나무와 꽃, 겨울이면 겨울대로, 어느 계절이어도 좋다. 신께서 주신 아름다운 이 땅의 동산을 다시한 번 감사하며 더 아름다운 천국 동산을 바라보리라. 마지막 종착역이 바닷가라면 더 좋을것이다.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담고 남아 있는 아침 이슬은 눈동자에 넣으리라. 석양을 배경 삼아 노을빛으로 그림을 한 장 그려야지. 먼 바다에 배 한 척 띄우는 것도 잊지말아야겠다. 창이 커다란 방에 달님을 베개 삼아 누워서 쏟아져 들어오는 별빛으로 천장에 수를 놓으리라. 은하수는 기꺼이 포근한 이불이 되어 주고 철썩대는 파도는 나의 새로운 생을 축하해줄 것이다. 눈을 감고 나의 이생을 영상으로 돌리며 나는 말하리라. "신이여, 나의 등불이시여! 여기까지 인도하심을 감사하나이다. 나를 받으소서!"                                                                                                           (2007.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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