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소나기

2007.09.30 13:54

박정순 조회 수:89 추천:7

소나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박정순 온 세상이 깜깜해지는가 싶더니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사무실에서 나올 때부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지만 주차장에 갈 때 까지는 내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소나기를 만난 것이다. 아침에 주차하면서 우산을 챙길까 하다가 오후에는 날씨가 갤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겨를도 없이 길옆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나마 재래시장으로 들어서면서 소나기를 만났기 때문에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허름한 재래시장 건물 처마 밑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무관심한 채 천둥 번개까지 동반하고 내리는 소나기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갈 시간에 맞추어 약속을 했기 때문에 비가 그치지 않으면 약속시간을 어길 것 같아 안절부절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빗줄기가 가늘어지면 5분 거리인 주차장으로 달려갈 마음으로 주변에 우산을 대용할 만한 것을 찾았지만 신문지 한 장 보이지 않았다. 한낮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를 고마워 할만도 하지만 비 때문에 발이 묶여 허름한 재래시장 닭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현실을 못 견뎌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맹렬하게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골목길 낮은 곳에는 빗물이 고이고, 고인 빗물위에서 빗방울이 수없는 동그라미를 만들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빗방울을 보면서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약속시간을 변경하고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조금 미루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자 그때서야 함께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한 사람은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로서 길에 좌판을 벌이고 푸성귀를 파는 아주머니인 듯했다. 건물 벽을 그늘삼아 장사를 하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장사를 하지 못하여 심란한 표정으로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70세가 넘어 보이는 평범한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나와, 소나기 때문에 장사를 망쳤다고 불만이 가득한 아주머니의 표정과는 달리 할아버지의 표정은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오히려 비가 내리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할아버지 옆에 자전거가 있는 것으로 봐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였다. 조급하고 불만스러운 주변 사람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소나기를 피하는 노인을 보고 좀 특별한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마 끝에서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소리와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들으며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 가려고 발을 내딛으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할아버지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비가 그칠 것 같은데 무엇이 급해서 옷을 버리면서 급하게 가려고 해요?”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생긴 일이라 당황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좀 바쁜 일이 있어서요.” 라고 얼버무리면서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엉거주춤 서있는 나에게 아무리 바쁘고 긴급한 일이라 해도 기다려야 할 때에는 기다리고,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추는 것이 삶의 지혜라면서 말씀을 시작하셨다. 바쁘다고 비를 맞으며 가는 것은 벼락을 맞을 위험도 있고 또 비를 적게 맞으려고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사는 급한 일이 아니면 비를 맞으면서 까지 서두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처음 비를 피하여 닭 집 처마 밑으로 들어 올 때부터 할아버지는 나의 조급한 행동과 불만스러운 내면을 읽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나기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던 나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노트북 컴퓨터 가방을 든 사람이 소나기가 지나가는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불만스러운 행동으로 조급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고 휴대 전화로 약속 시간을 변경하면서 상대방에게 소나기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변명을 하는 것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빗방울이 조금 가늘어지는 것을 보면서 손에 든 가방을 머리위로 올린 채 빗속으로 뛰어 가려는 나를 보고 옷소매를 잡아당긴 것이었으리라. 계면쩍게 엉거주춤 서있는 나에게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 소나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하고 요긴한 비였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농사를 지을 때에는 무더운 여름철 한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가 농작물에도 요긴하였지만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약이 될 만큼 귀한 비였다는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서 갑자기 만난 소나기를 피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으로 빗방울을 바라보며 미소까지 머금던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고 소나기를 피하러 들어간 처마 밑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오늘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인생에서 소나기를 만났을 때 나처럼 불평하고 조급해 하며 인내하지 못하고 빗속으로 뛰어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할아버지처럼 소나기가 내릴 때는 멈춰 서서 생각하고 기다리다가 비가 그치고 태양이 구름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여유로운 자세로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좁은 시장길 처마 밑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던 사람들이 구름이 걷히고 비가 그치는 것을 보면서 하나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주차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언제 소나기가 내렸느냐는 듯이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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