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착각

2007.10.06 08:25

김병규 조회 수:61 추천:7

착각(錯覺)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김병규 지난여름은 더위가 장마를 등에 업고 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섭씨 35도를 넘던 온도가 제풀에 꺾이더니 가을이 성큼 문턱을 넘어왔습니다. 풍요로워 가슴 벅찬 가을이, 닫혀있던 결혼예식장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결혼청첩장이 하나둘 우편함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날에는 경사나 애사 구분 없이 찾아가 축하하고 위로해 주었지만, 고희를 넘기고서는 결혼식장에 가기가 꺼려졌습니다. 나이 칠십에도 갈 곳 안 갈 곳 다 찾아다니며 세상일을 간섭한다는 것은, 통행금지시간에 밤길을 다니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안내장을 받으면 축하전보를 보내거나, 인편에 봉투를 보내곤 했습니다. 자식들을 결혼시킬 무렵엔 즐겁고 반가운 마음으로 예식장을 드나들었습니다. 막내아들을 마지막으로 결혼시킨 지가 10년이 넘으니 남의 자식 결혼에 대한 관념이 시들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막역(莫逆)한 친구가 결혼안내장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아들 결혼이라며 동참을 원했습니다. “손자를 짝지어줄 나이에 아들 결혼이라니! 자네 늘그막에 부인과 장난이 심했던 거 아냐?” 농담으로 건네는 말에, “그러게 말일세, 팔십이 가까운 나이에 자식 결혼안내장을 보내려니 창피하고 부끄럽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친구와 나는 두 손을 맞잡고 한바탕 웃으며 동행을 약속했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개천절 날이었습니다. 혼주의 가족과 하객을 태운 버스는 서울을 향하여 신바람 나게 달렸습니다. 12시 정각에 예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예식장은 아이파크몰(I PARK MALL)이라는 거대한 건물 안, 7층 파크컨벤션 웨딩홀이었습니다. 식이 진행되는 순간, 주례의 주례사를 귀담아 들으면서, 내가 주례를 하던 지난  날을 떠올렸습니다. 젊은 날의 패기만 믿고 100여 쌍이 넘는 주례를 맡으면서, 그들이 탈 없이 잘 살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주례를 서 주는 순간부터는 그들에 대한 애착이 지워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의 귀한 자식의 앞날에 보석 같은 말을 주기나 했던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점심 식사까지 끝났는데도 돌아올 차에 타기로 한 약속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건물 내부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건평이 2만평이나 되는 건물 안에는, 백화점, CGV영화관, 전자전문점, 휴게실, 예식장, 오락실, 식당 등 다양한 시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구경거리가 제법 쏠쏠해서 마음 놓고 기웃거리다 보니 약속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구경에 정신이 팔렸던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다녔는지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차에서 내린 곳을 1층으로 판단했습니다. 1층으로 가려고 승강기를 탔습니다. 하강하던 승강기가 3층에서 멎었습니다. 1-2층은 없고 3층에서 올라갈 신호가 울렸습니다. 나는 승강기에서 내려 1층으로 갔습니다. 1층의 밖에는 용산전철역이 보일 뿐 버스 주차장이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버스주차장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1층에서 내려서 7층으로 올라갔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버스 주차장을 찾으려고 1층에서 3층을 세 바퀴나 돌았어도 찾지 못했습니다. 약속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혼인 대절차가 떠나버리면 열차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면서 다시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3층에서 노부부가 다정스럽게 지나다가 내 옷깃을 스쳤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 건물에 버스 주차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도 버스 주차장을 가는 길이라 말했습니다. 그들을 따라갔더니 버스 주차장이 그 곳 3층에 있었습니다. 버스 주차장은 지상에 있을 테고 지상이 1층이기 때문에 1층에만 주차장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혼인 대절차에는 혼주 가족과 축하객들이 모두 타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혼주는 차 떠날 시간이 임박하자 가슴을 조이며 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여 사고나 나지 않았는지 걱정하던 중이라 했습니다. “이 사람아! 3시 5분전일세!” 나는 너털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착각은 상황 판단의 미숙에서 오는 일입니다. 내가 70평생 살아오면서 착각을 일으켜 큰 낭패를 당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세밀히 살피고 판단해서 착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리라 믿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착각 없이 판단하는 것이 바르게 사는 방법인 듯싶습니다.                                   (2007.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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