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진흙과 연꽃

2007.10.09 14:40

서순원 조회 수:74 추천:5

진흙과 연꽃                                                        행촌수필문학회 서순원                                                                                  사람들 중에는 연꽃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연꽃은 색상이 지나치게 현란하지 않아서 좋고 그 향기가 은은하여 더욱 좋다. 뿐만 아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도 흙탕물에 오염되지 않아서 좋고, 언제나 고고한 모습이면서도 거만한 빛이 전혀 없어 더더욱 좋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연꽃을 다른 꽃들보다 더 기품이 있는 꽃으로 여기고 있나보다. 하지만 만약 진흙에서 연꽃의 뿌리를 뽑아내어 연꽃과 진흙을 분리시켜 놓는다면, 그 연꽃은 얼마 동안이나 저의 아름다운 자태를 지속할 수가 있을까? 그 연꽃은 아마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이내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연꽃은 진흙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진흙은 연꽃 생명의 근원이며 연꽃 향기의 근원인 셈이다. 진흙이 아무리 더럽고 추한 모습일지라도 연꽃은 그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서야 자신의 삶을 지탱해 갈 수가 있고, 아름다운 자태 또한 유지할 수가 있다. 사람들의 일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아무리 진흙탕속의 난장판 같더라도 우리 몸뚱이는 이 세상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의 사물을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르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감정에 따라 분별하기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을 이것은 아름답고 저것은 추하다. 이것은 선이고 저것은 악이다. 이것은 성이고 저것은 속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런 분별지(分別知)는 때로 옳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것들은 대개 인간 기준의 판단이고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연꽃은 아름답고 진흙은 추하다는 말도 우리 인간들이 바라보기에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진흙 속에서 살고 있는 작은 생물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진흙속이 연꽃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소중한 곳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부처는 연꽃이요 중생은 진흙이다. 극락은 연화세계요, 속세는 진흙세계라고 각자의 생각대로 세상을 설명한다. 하지만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요, 극락과 속세도 둘이 아니다. 부처는 깨달은 중생일 뿐이고 중생은 아직 깨닫지 못한 부처일 뿐이다. 부처는 잘 닦아서 깨끗해진 거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중생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얼룩져 있는 거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직 깨우치지 못한 어리석은 중생들도, 탐진치로 얼룩져 있는 마음거울을  깨끗이 닦기만 하면 너나없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불성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생이 깨달아 부처가 되면 하늘에 있는 극락나라로 날아가 그곳에서 부처들끼리 호의호식하고 사는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깨달은 부처도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과 함께 속세에서 더불어 살아가야한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우친 원효스님도 속세에서 중생들을 교화하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부처가 되신 뒤에 불법을 설파하고 중생을 제도하시면서 일생을 사셨다. 석가모니께서는 자신의 모국인 카필라왕국의 멸망과 석가족 형제들의 참혹한 죽음을 지켜보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 속세에서 일생을 살다가 열반하셨다. 깨달은 부처도 하루 밥 세 그릇, 속세의 중생들도 하루 밥 세 그릇, 하루 밥 세 그릇 먹고 살아가기는 부처나 중생이나 마찬가지이다. 중생들을 괴롭히는 팔정고(八定苦)가 부처라고해서 외면하고 빗겨가겠는가.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 배춧잎에도 연잎 위에도 빗방울은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속세의 번뇌는 깨우친 부처에게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중생에게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다만 배춧잎에는 물기가 촉촉이 배어들고 연잎에는 물방울이 머무르지 못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중생들은 마음속에 탐진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부처의 마음속에는 삼독의 악취가 스며들지 못할 뿐이다. 부처가 되려고 속세를 떠나지 마라.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 아니던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사바세계가 곧 가장 잘 차려진 불법수련도량이다.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라. 과욕을 부리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도박으로 전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곧 나의 스승이다. 소견이 부족하고 능력 또한 부족한 사람이 높은 자리를 탐내다가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곧 나의 스승이다. 성질이 불과 같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웃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도 나의 스승이다. 의지가 약하여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도 나의 스승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삼가야만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 우리들 마음에는 훌륭한 덕(德)이 고루 갖추어져 있지만, 탐욕으로 인해 마음속에 변덕(變德)이 생기면 각자의 인격이 허물어진다. 그러므로 먼저 내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고, 나와 가까운 한 사람 한 사람을 부처님 섬기듯 받들어 모시면, 그 길이 부처가 되는 첩경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부처님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세상, 그곳이 곧 극락세계라고 생각한다.                               (20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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